2. 사촌 누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간의 선택이 주는 아찔함을 느껴 봤는지.
그날 밤 그랬다.
나의 애마가 주인의 순간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들어갈걸. 엄마 말 들을걸,
“세 번만 타고 들어오거라.”
“예~”
‘예’가 '아니오'를 의미할 때가 있다.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아는.
‘예’가 ‘예’가 되었더라면 사촌 누나를 만나지 않았을 거고, 나의 자전거도 예전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날 사촌 누나가 왔다. 누나는 큰 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닌다. 방 두 개짜리 상하 방을 얻어 자취한다고 했다. 대부분 당숙모가 다니며 치다꺼리를 해 주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누나가 왔다. 눈부실 만큼 하얀 상의에 까만 치마 교복을 입고 온다.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와 반짝이는 까만 구두를 신었다. 단추가 터질 듯 팽팽한 가슴에 이름표와 학교 마크가 반짝거렸다. 누나네는 부자다. 동네 앞 들판 여기저기 누나네 논이 많다. 우리 아버지도 누나네(누나 할아버지) 논을 짓는다. 산과 밭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누나가 대도시로 유학 갈 수 있는 거다. 누나네와 친하냐고? 그렇지 않다. 멀리 중기 할아버지(누나 할아버지)가 보이면 일부러 다른 골목길로 다니고는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괜히 어려웠다. 당연히 누나하고도 그런 사이였다. 골목에서 마주쳐도 맹숭맹숭 지나칠 뿐이다. 그런 누나이기에 누나 모습이 보일 때 조그만 주의도, 우려도 없었다. 완벽한 무방비로 누나가 나타났다. 세상에, 누나가 알은체를 한다. 나? 아닐 거야. 전봇대 뒤에 누가 있나?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데.
“기수야? 야? 왜 대답이 없어?”
“나?”
“그래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
“나 자전거 좀 타자?”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못 했다.
“자전거? 누나가? 나? 자전거?”
“자전거라니까.”
“...”
이상한 누나였다.
아는 체하는 것도 이상했고, 내가 아니라 자전거를 아는 체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누나의 엉큼한 속셈을. 그리고 평소처럼 맹숭맹숭 지나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