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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pinion 수필

가을 운동회

작은 것이 아름답다.

by S 재학

‘지나간 시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기억 때문이다.’


예전에는 운동회를 두 번 했다.

5.5 어린이날은 체육대회라 부른 간단한(개인 달리기, 이어달리기 정도로, 대부분 5.1 근로자의 날에 했다.)운동회를 하고,

2학기에 가을 운동회 또는 가을 ‘대 ’운동회(보통 2학기 개학하고 바로 운동회 연습을 시작하면 이렇게 부른 것 같다.)를 했는데 그때가 추석 무렵이다.


시골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는 마을의 축제였다.


운동장 가 천막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솥에는 무언가(구수한 냄새가 발걸음을 잡는) 맛있는 음식이 끓고, 그 옆 광주리에는 고구마와 옥수수, 삶은 밤이 가득했다. 미류나무 아래 물이 찬 함지박에는 캔음료와 수박이 둥둥 떠 있고, 운동장에는 이어 달리기 하는 어린 선수 옆에 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나란히 달렸다. 바톤을 놓친 선수가 나오면 모두 아~ 탄성을 울리고, 아이는(간혹 성질 급한 부모가 주워 주기도 했다.) 허둥지둥 주워 다시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강술래와 꼭두각시 춤을 지도할 줄 아는 교사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예전 가을 운동회는 이런 모습이었다.


2023년에 예전 모습을 연출했다.

아니다.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전교생 50명이 가을 운동회를 했다.

주제를 ‘마을과 함께, 가족과 함께’로 잡았다.

2학기 개학하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경기 연습은 없었으니 ‘대’운동회는 아니다.)

학급에서 전시 작품을 만들었다.

학년 수준에 맞게 시화, 그림, 수공예 등을 준비했다.

82년의 역사답게 아름드리 나무와 우거진 숲이 있는 교정을 전시회장으로 활용했다.

운동회 2주 전, 국화를 100여 그루 심어 놓은 것은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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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허전하다.

솜사탕, 문어빵(타코야끼), 어묵, 팝콘…

저쪽 나무 아래서는 삼겹살을 구워 댄다.

‘기수 아빠, 음주 안되는 것 아시죠?’

‘아휴, 안주만 먹을 거예요. 하하’

이 준비 대부분 아빠들이 했(다고 하)고, 만들어 준 것도 아빠다.

(아빠들은 대단하다.-엄마들은 더 대단하다.-

어제 만국기 치는 것부터 운동회 끝나고 철거까지 다 했다. 이틀 휴가를 냈단다.

난 우리 아들들에게 그렇게 못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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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 어떻게 하실래요?’

‘한 마디만 할게요. 오늘~~~ 맘껏 소리 질러!. 끝!’


‘상품 아낌없이 준비하세요.’(살림에 쓰일 것으로)

학교에서 절편 떡을 서 말 했다.

학부모회 임원들이 동네마다 나눴다.

어르신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 보기 좋다.


프로그램 대부분은 ‘함께’ 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만 5세 유치원부터 13세 6학년, 거기에 가족이 더해졌다.

전교생 150명이 되었다.

여섯 살 아이에 맞춰야 하니 엄마 아빠는 저절로 트위스트가 나온다.

이기고 지는 경기가 아니다.

다 함께 웃고 즐기는 경기다.

딸을 업고 뛰는 아빠는 옆 사람 추월보다 딸의 안전이 먼저다.(그래도 승부욕을 억제 못해 아빠 등에서 덜컹거린다.)

2인 삼각은 어렵다. 엄마의 욕심에 딸이 옆구리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것도 모르고 달린다.

우려했던, 계주할 때 넘어진 엄마 아빠 없었다.(이건 민망함을 떠나 부상의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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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운동회는 지역 축제다.

학년 당 열 명 안되는 작은 학교에서 훌륭한 축제를 치러냈다.

이번 운동회 맘 먹고 계획하고 실행했다.

‘작은 학교가 갖고 있는 잇점을 최대로 살려 보자.’

‘작은 것이 강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하자.’

‘우리라는 감정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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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 핵가족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책이 작은 학교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뛰고 달려도 넘치는 공간에서 누리는 자유를 값어치로 환산할 수 있을까?

소규모 학교가 갖는 장점은 경제 논리로 계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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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희망사항인데…) 초중고가 함께 있는 캠퍼스를 그려 보았다.

도심 외곽에, 널따란 부지에 현대식 시설과 자연을 함께 갖춘 학교에 일곱 살부터 열 아홉 살까지 함께 공부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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