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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레

8. 기수

by S 재학

기수는 몸치다. 잘하는 운동이 없다. 몸이 둔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운동의 경험이 없다. 좋아하면 자주 하게 되고, 자주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움직임을 좋아하지 않는 몸치, 즉, 몸치가 아닌 몸치이기에 뜻밖에, 예측하지 못한 실력을 보여 줄 때가 있다.


오늘도 아이들은 타작 마당에 모였다. 종구형 명령으로 자치기를 먼저 했다. 두 편으로 나눌 때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가위바위보를 한다. 거기서부터 자존심이 상한다. 기수의 실력을 한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게 쳐 준다.


기수가 공격할 차례가 오면 수비하는 아이들은 긴장이 풀어 진다. 온 힘을 다해 날린 막대는 수비 편 중 누가 받아도 좋은 속도와 높이로 날아 손바닥으로 쏙 들어갔다. 어떤 아이는 기수가 치기도 전에 공격과 수비 위치를 바꾸려 달려 오기도 한다. 기분이 나쁘다.


물론 예상치 않게 멀리 날려버릴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종구형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지만 아주 가끔일 뿐이다.


구슬치기도 마찬가지다. 골목 생활 1년만 되어도 거리 불문하고 상대편 구슬을 튕겨 내야 한다. 엄지든 검지든 어느 손가락으로 날려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물론 엄지가 잘 먹히는 아이가 있고, 검지나 중지로 날리는 것에 특출난 아이가 있다. 대부분 아이는 둘 중 하나지만 잘했다.


하지만 기수는 그러지 못했다. 바로 코 앞에 있는 바위만 한 구슬도 용케 비켜 가게 굴렸다. 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힘들 것이다. 그뿐이라면 다행이다. 기수가 흉내도 못 내는 운동은 수도 없이 많다. 두 손 놓고 자전거 타기. 그렇게 탄다는 것은 신기에 가깝다. 기수는 몸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인근 네 개 면 여섯 학교 졸업생이 두 중학교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진학했다. 한 곳은 공립 중학교이고 다른 한 중학교는 같은 울타리 안에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사립중학교였다. 아이들은 공립을 가고 싶어 했으나, 학교 선택을 뺑뺑이라고 부르는 기계로 했다. 물레들처럼 생긴 상자 안에 숫자가 쓰여 있는 은행알이 들어 있고, 손잡이를 돌리다 알이 떨어지면 멈췄다. 기수에게는 사립중학교 번호가 나왔다. 잘못을 저지른 기분으로 아버지 앞에 섰고,

‘그것도 못 뽑냐?’

라고, 힐난하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 잘못했구나 하고 주눅이 들었다.


다행히 중학교는 재미있었다. 공부도 여전히 두각을 나타냈다. 급장이 실장이라는 호칭으로 바뀌었다. 공부 잘하고 성실한 실장으로 3년을 보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3학년 때는 전교 회장이 되었다. 과목별로 들어오는 선생님은 수업 시간을 빼 먹지 않고 교실도 비우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 졸업하고 친구 대부분이 인근 도시나 같은 재단 고등학교로 진할 할 때 기수는 어느 곳도 선택하지 않았다. 상급학교를 진학할 형편이 안 되었다. 도시로 고등학교 시험을 보러 가는 친구 손에 껌 한 통을 쥐여 주며 잘 보고 오라고 했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껌만 받아 버스로 올라갔다.


고등학교는 학교마다 교복이 달랐다. 친구들이 각각의 교복을 입을 때 기수는 광천동 공단으로 갔다. 한○제과. 때에 절어 끈적거리는 카시미롱 이불이 말려 있는 기숙사에서 두 살 많고, 다섯 살 많은 형들과 지냈다.


배달 트럭이 바쁘면 트럭 조수가 되고, 달걀이 들어오면 달걀을 깼다. 어떤 날은 50판이 넘게 깼다. 월급이 얼마였는지 기억에 없다. 아침에 여공들이 들어왔다 저녁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장은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으로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그때부터 기숙사 형들의 놀이가 시작되었다.

‘야, 꼬맹이 이리 와봐.’

‘…’

‘샤~끼가 오라면 얼른 올 것이지. 내가 경비아저씨랑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까 넌 뒷문으로 들어가 과자 좀 가져와라. 아까 작업하면서 박스 아래 숨겨 놨거든. 알았지? 그거 빼 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싫어요. 형들이 하세요.’

‘이 새끼가, 얀마 너도 줄 테니까 가져와!’

기수는 과자를 가져오지 않았고, 방에 들어가 맞을 뻔했다. 과자는 두 살 많은 형이 가지고 나왔고, 달걀이 듬뿍 들어간 샤브레였다. 낮에 달걀 30판을 깼다.

이미지 출처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sc=tab.image.all&where=image&sm=tab_jum&query=%EC%83%A4%EB%B8%8C%EB%A0%88#imgId=image_sas%3Ablog_fa4b7ea83fa58a9fe95613975db3ce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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