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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pinion 수필

바람

이제부터 힘든데…

by S 재학

나의 하루는 일정하다. 거의, 99% 예측 가능하다. 그 시간에 출근해서 그 시간에 퇴근하면 헬스장에 가 있고, 운동하고 와서 씻고 저녁 먹고 잠깐 TV보다 잠자리에 들어, 또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 아마 1분 정도 차이 나려나? 가끔 평일 약속이 있어 이 패턴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들어진다. 리듬이 깨지는 기분이 들고, 다시 회복하기 위해 이틀 정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 삶이 내 삶이 되었나 보다.

가끔 리듬대로 안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날은 몸이 심심하거나, 마음이 평이하지 않은 날이다. 그럴 때는 그냥 마트 가서 괜히 무언가를 사고, '그냥' 시내를 걸어 다니다 온다. 물론 이런 날은 드물다. 대부분은 걷고 싶을 때, 헬스클럽 대신 그냥 걷고 싶을 때다. 보통 동네 뒷산을 간다. 1:30 코스를 택한다. 시내에 있는 산인데 제법 골짜기도 있고 우거진 숲도 있다. 여느 산처럼 여기도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적당히 땀이 나고, 헉헉거림이 힘들 때쯤 쉴 수 있게 의자가 나타나고 솔바람이 불어온다. 손에 잡힐 듯한 아파트도, 장난감 같은 자동차도 가벼워 보인다.


지난 금요일엔 바람을 쐬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거리가 필요했다. 그래? 바람 제대로 맞아 볼까나? 그런 곳이 어디지? 있다. 몇 번인가 그 아래까지 갔다 되돌아왔던 곳. 그래 이번엔 가보자.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40-115

울산바위


생수 한 병, 연꽃 빵 4개만 들고 출발했다. 목표가 정상이므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곡 물소리도 권금성에서 우짖는 까마귀 울음도 들리지만 내 목표는 정상이다.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오르는 사람의 1/3쯤? 1km 남겨 놓고 흔들바위에서 체력을 보충했다. 이제부터 힘든 구간이다.

바람 쐬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맞고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도 맞았다. 마음이 씻겼냐고? 잘 모르겠다. 그냥 맘 먹은 것 해 냈다는 것밖에.

내려오는 길은 수월하다. 조금씩 보이고 들린다.

곧 있으면 단풍 들겠지? 이 작은 꽃 이름이 뭘까?

이제 올라가는 저이들은 어디까지 갔다 오려나?


할머니를 만났다. 나이키 반바지에 운동화가 너무 크다. 손에 든 지팡이가 흔들린다. 다리가 너무 가느시다. 80 중반쯤 되셨을까? (어머니와 비교해서) 뒤에 아들인 듯싶은 젊은이가…할머니 엉덩이에 가벼이 손을 대어 밀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실 수 있었구나.

600m만 오르면 되는데, 이제부터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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