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기수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친구들보다 1년 앞당겼다. 8월에 합격 통지서를 받고,
‘자식 중 하나는 면사무소에 있으면 좋겠다.’
라는 어머니 말씀을 따라 곧바로 9급 행정직 수험서를 들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역할 만큼 자라지 못했다. 다행히 과목이 적었다.
다시 주경야독의 시간이 되었다. 수석 가게에서 일했다. 마디카라는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나무를 깎아 좌대를 만들었다. 사장이 깎은 좌대를 사포질로 문질러 반질반질하게 다듬고 니스 칠을 하는 것이 일이다. 물론 틈틈이 전시된 돌에 콩기름을 발라 윤이 나게 해야 하고, 나무 부스러기 치우는 것도 기수 몫이다.
월급 5만 원에 점심을 주는 조건이다. 가게 밖 인도에 앉아 수북이 쌓여 있는 좌대를 사포로 문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먼지를 하얗게 둘러쓴 기수를 피해 갔다. 창피한 기분이 들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사장이 밖에서 하라고 했다.
가게는 할일 없는(?) 사장들이 드나들었다.(가게에 오는 아저씨 모두를 사장이라 불렀다) 수몰되기 전 남한강에서 캤다는 돌을 100만 원에 팔았다고 자랑했다. 돌을 앞에 놓고 산수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가게 문 닫을 때 사장님한테 물어 보니 웃기만 했다. 공구 가게 사장님이 제석산에서 주웠다는 까맣고 우둘투둘한 돌을 부딪치니 쨍하고 쇳소리가 났다. 미양상회 사장님은 섬진강 호피석이라며 콩기름을 얼마나 열심히 발라대는지 원. 돌멩이를 돈을 받고 사고팔았다. 돈 버는 게 별거 아니구나 싶어 일요일이면 하천을 다니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주워 온 돌을 사장님은 똥 돌이라고 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시립 도서관을 이용했다. 일을 마치면 곧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입장료가 100원이었다. 동네 형이 도서관 직원으로 있었다. 형이 매표소에 앉아 있으면 그냥 통과했다. 형이 보이지 않는 날은 어쩔 수 없이 돌아와 자취방에서 공부했다. 100원이 아쉬운 나날이었다. 추석이 되었다. 조금 떳떳하게 고향을 찾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다는 생각에 허리가 펴졌다. 마당에서 놀던 동생들이 들어서는 오빠를 보며 반가워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면사무소에서 근무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동네 친구들은 만나지 않았다. 글씨도 읽을 만큼 달이 밝다. 건넛마을 친구에게 갔다. 작은 방에서 이야기 하는데 친구 어머니가 아들 친구는 아들과 같다면서 고구마와 밤 삶은 것을 들여 주신다. 친구와 장래 일을 이야기 했다. 목회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부러워한다. 나도 너처럼 공부해야겠다고 하는데 표정이 어둡다. 친구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다 멈추었다. 늦도록 이야기하다 돌아왔다. 문득 보름달을 보며 공무원 시험 준비가 맞는지 생각이 많아졌다.
추석이라고 아침에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많은 반찬이 있다는 것만 다를 뿐 바로 논으로 갔다. 어린 동생들도 가을걷이 돕는다고 따라나선다. 가족이 다 모이니 참 좋다. 일이 끝나고 막냇동생을 제 누나가 업고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가 그러셨다.
‘대학을 가거라. 너 하나 대학 못 보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