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코 있어야 할 때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by 구우

우리 집 큰 어린이가 학교 과학시간에 식물의 한살이에 대해 배우며 강낭콩을 받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진을 찍어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며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라는 취지였는데 결론은 몇 주 채 지나지 않아 삐들삐들 말라 버렸다.



강이 낭이라고 어여쁜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같이는 아니어도 수시로 들여다보고 물도 주고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았으나 강이 낭이는 결국 죽고 말았는데 아이는 아직도 화분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쟤들은 이미 죽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 대단히 듣기 싫어했다.




아이 친구에게 바질 씨앗을 얻은 걸 큰아이 작은아이가 각자 화분에 정성스레 심었는데 작은 아이 화분에서는 잘도 자라는 바질이 큰 어린이 화분에서는 도통 힘이 없다. 공교롭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겠지? 강이 낭이에 이어 밥풀이까지 말이다. 밥풀이는 바질이의 이름이다. 이렇듯 이름까지 지어주었는데 말이다. 정작 작은 어린이는 베란다 나가다가 자신의 바질을 확인하는 정도라는 것이 공교롭다의 절정이다.




큰 어린이가 나에게 와서 밥풀이가 쳐져 있다. 잘 자라지 않는다 라며 밥풀이마냥 기운 없이 이야기했다. 이웃에게서 페트병으로 만든 화분에 벼 한 줌(?)씩 얻어와 키우고 있는 건 제 동생것보다 제 것이 하늘 높이 자라고 있는데 그건 눈에 안 들어오는지 아픈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날 아이는 시작부터 끝까지의 시간으로만 치자면 몇 시간을 울었는데 아이는 엄마인 나에게서, 조금만 더 보살펴 주자 지켜봐 주자 라는 말이 듣고 싶었을까? 하긴 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날은 이제 좀 그만..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내가 식물이라서 가벼이 여기나? 그렇다고 해도 아니 뭘 어쩌라고! 죽었는데!




에휴... 이제 그만 강이 낭이와 밥풀이에게 잘 가 미안해.. 하고 인사해줄까?라고 좋게 말했지만 그 말에 아이는 꾹꾹 참았던 듯 울음을 터뜨렸고 7월에 고온다습한 대한민국의 여름에 에어컨 고장 난 우리 집에 최선을 다하지만 더운 바람 뿜는 선풍기 앞에서 엄마는 아이고 순수한 우리 어린이..라는 마음보다는 아이고 그만 좀 울어라.. 하는 마음이 더 많이 들었을 뿐이고..




두어 시간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아이는 기분이 영 나아진 기색이 없었고 나는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밥풀이 때문에 속상하지라고 말만 꺼냈는데 아이는 또 울었다. 으앙.. 나도 울고 싶다.




이것은 며칠 된 이야기고.. 결론은 아직도 강이 낭이 밥풀이는 있다. 존재는 하고 있다. 네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가만히 놔둬라고 말하고 더 이상 이야기 안 했다. 벼도 잘 자라고 있고 모형인가 싶었던 다육이는 세상에 키가 두 배나 자랐는데 그건 눈에 안 들어오나 보다. 뭐 그렇지. 이해는 한다. 좋은 건 당연한 거고 안 좋은 건 문젯거리처럼 느껴지는 게 비단 속내 알 길 없이 자라거나 죽거나 하는 저 식물뿐이겠는가 말이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 다만 미안한 건 그거 하나 기다려 주지 못해 입을 보탠 것이라 오늘 글의 결론은 좀 하고 싶은 말도 참아 보자...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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