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니 12시가 지났으니 어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에어컨 수리 기사님이 오셨다. 오전에 방문한다 하여 9시부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어 다시 전화하여 연락 달라는 메시지도 넣고 하여 힘들게 1시가 다 되어 뵐 수 있었던 귀한 분이셨다.
다른 가전제품이 고장 났으면 덜 죄송했을 것 같다. 찬바람이 안 나와요 라는 내가 입력한 짧은 문제점에 기사님은 내내 실외기가 달려 있는 베란다에 계셨고 나는 선풍이를 최대한 가까이 갖다 대어 강풍으로 돌리고 물도 갖다 드리고 하였다.
"냉매(가스)는 소모품인가요?"
이 말을 희대의 웃픈 말로 지정해 주고 싶다. 웃긴 이유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기사님의 단언 때문이었고 슬픈 이유는 매년까진 아니어도 에어컨 때문에 수리를 요청했을 때는 열에 아홉이 냉기가 나오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이 에어컨을 우리 집 첫째 보물이 태어나던 해에 구입했으니 2012년인데 모델은 2011년 것이라고 하셨다. 가스가 새는 이유는 탁 집어 말할 수 없이 의심이 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지금은 가스를 넣어서 올해는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겠으나 내년 봄에 사전 점검 기간에 필히 다시 검사를 받아서 출장비 수리비 등의 혜택을 받아 필요한 교체 및 수리를 받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셨다.
콕 집어 말씀하진 않았으나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라는 기사님의 말 뒤에 숨은 뜻은, 강산이 변하도록 쓴 에어컨에 애석하게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냉기가 새는 부분이 확인되었으니 기십만원을 들여서라도 수리를 하던지 아니면 새로 구입을 고려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수리는 몇 십만 원이지만 에어컨은 몇 백만 원 아닌가요?라고 나름 농담이라고 던져 보았는데 기사님은 웃지 않으셨지...
하여 결론은 삶의 질은 멀지 않다 에어컨을 튼 것으로 나는 세상 더할 나위 없는 인자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용심이 솟아 김밥 재료를 사놓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말거나 나보고 음식 하라고 하기만 해봐 하며 물어뜯을 기세였는데 찬 공기 한 줄기에 그럼 이번 주말에 한 번 김밥 말아봐? 하고 마음이 고새 기운다. 내가 이렇게 얄팍한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 같은 건 딱히 들지 않는다. 이것이 맞다. 다른 것 다 차치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