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짐작할 수 없는 마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내 아이는 오늘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아이고 몇 시간이 뭐야 고개만 돌리면 분명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터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는 지금은 세상이 무너진 듯 슬프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눈물이 단단히 굳어 댐이 되어 내 마음에 딱 벽이 되어 서 있을 것을 알고 그걸 알아도 다음에 또 아이를 울리게 될 것이다. 이 생은 미완성으로 끝날 걸 알기에 내 아이에게 덜 상처를 입히는 길을 열심히 모색하는 중이다.
내 형부는 언니의 남자친구 였을 적부터 고양이와 함께 했다. 그 고양이가 짝을 만났고 새끼를 낳았고 죽은 새끼와 죽지 않은 새끼가 있었고 그이가 얼마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아비는 작년에 무지개 동산으로 갔고 그의 새끼지만 내 눈에는 충분히 연로해 보였던 까꿍이가 얼마 전 떠난 것이다. 손가락을 꼽아 헤아려보니 그들은 십 년을 훨씬 넘게 살아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라 불리는 세월을 지내다 갔지만 손가락을 더 꼽아보지 않아도 형부의 고양이들은 이제는 세상에 더 없었다. 우리 조카가, 형부와 언니의 아들인 우리 조카가, 아빠가 슬퍼 보였어 라고 말했다고 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과 그에 따르는 감정은 내가 감히 짐작해 볼 수 없다. 더 난감한 것은 내가 경험을 했더라도 쉬 입을 열기가 힘들 때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나는 그때 그랬어요 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 나는 이런 상황에 늘 입장을 반대로 두어 본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해서 엉엉 울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상황을 겪어 봤다며 이야기 하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
모르겠다. 짐작은 되는데 굳이 안 적고 싶다. 나는 아마 그럴 것 같다. 아이고 내가 겪어봤는데 아주 죽을 맛이었어 아직도 회복이 안 된다니까. 라고 말하면 나도 회복이 안 되어서 죽을 맛일 것 같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이러저러 했더니 극복이 되었어 라고 말하면 나도 그 극복이 되는 방법에 매달려서 억지로 극복을 하고 앉았을 것 같다. 또 누군가가 나는 매일 창 밖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어 라고 말하면 나는 그 방법이 제일 쉬워서 매일 베란다에 슬리퍼를 양 발도 맞지 않게 꿰어차고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앉았을 것 같다.
세상 사람들 겪는 일에 내가 다 답을 내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제일 겁나는 부분은 해 줄 말이 없을 때이다. 죽고 말고 거창한 부분이 아니어도 말이다. 죽을 때까지 내 마음에 있을 내 아이들은 매일 서로의 탓을 하며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싸우는데 그러려니가 안 된다. 그렇다고 나는 의젓하게 답을 내 주지도 못한다. 양육을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한 건 아닌데도 남편 하는 행동에 내가 바라는 정답을 줘야 할 것만 같아 혼자 괴롭다. 그보다 더욱 마흔이 넘어도 진로 결정 마음 결정이 하나 되지 못해서, 오히려 해를 거듭해도 나아지는 것 없어 괴로운 건 마냥 내가 부족한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살면서 스스로 답을 내려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매일 멍하니 앉아, 누가 답을 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닌데 답을 알고 싶어 살아왔나 싶다. 공부와는 관계없이 답을 알면 마음이 편해지니 그랬을 것이다. 답을 안다는 건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하다는 건데 생판 몰랐던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와 함께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가 제 생각이 생겨서 내 품에 있는 존재가 아닌 어느새 내 앞에 우뚝 선 존재가 되고 배우자와 자녀를 넘어서 그 밖에도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는데 답을 예상하고서 움직이던 방식이 더 이상은 통하지 않으니 나는 매일 매 순간이,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지만 시험받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