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우 Sep 30. 2022

방선문

  아이들은 날마다 태어날 날로부터 가장 많이 자라있고 내 엄마 경력도 큰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한 달, 일년 단위로 차곡차곡 늘고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속에 이런 내가 있었는지를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모습의 내가 있다는 것을 근데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깨달음은 전쟁이든 평화이든 하루를 보낸 후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쓸어내리고 고사리 손을 매만질 때 눈물과 함께 찾아온 적이 많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육아서를 참 많이도 읽었다. 육아서를 읽으며 더 힘들어지는 날도 있었지만 위로를 받는 날도 있었다. 그 중에 와닿는 말은 내가 살아온 세월은 삼십 년인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이제 처음 해 보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같은 말이었다. 


  아이들은 올해 아홉 살, 열 살이 되었고 내 엄마 경력도 이제 햇수로 십 년이다. 내가 출산 전 회사를 다닌 경력보다도 오래되었다. 그럼 나는 베테랑이 되었을까? 이제 아이들은 당연히 배변을 가리고 제 손으로 밥을 떠 먹을 줄 알며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제도권 교육을 받으며 나름의 사회생활도 하고 있다. 그럼 나는 많은 것이 수월해 져야 하는데 날마다 숙제를 받는 기분이 들고 그 숙제를 망친 기분이 들고 여전히 잠든 아이들을 보며 울컥할 때와 자책을 할 때가 많은데  그건 바로 아이들도 자라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은 자라고 점차 제 생각도 강해지며 숨겨왔던 혹은 물려받은 성격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다. 동성에 연년생이라 둘도 없이 친하지만 빈번하게 싸운다. 특히 지난해는 내내 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집에서만 있었던 터라 서로에 대한 고발 고소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보통은 서로의 의사소통의 부족에서 오는 오해였으나 어쩔 때는 잘못한 놈이 명백할 때도 있었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지 그저 보듬어야 할 지 고민을 하지만 대개는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음에 헛베테랑 엄마는 그저 고함을 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반성문도 한동안 쓰게 했다. 왜냐하면 고함을 치면 나도 목이 아프고 그런 날 밤에는 후회도 더 많이 되고 아이들한테도 안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샤우팅은 해결이 아니라 화풀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성문을 쓰라고 했더니 잘못했다는 말만 쓰길래 뭘 잘못했는지도 쓰라고 했더니 그 이유가 제대로 나올 때도 있었지만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쓰길래 이것도 마음이 언짢아서 어떤 날엔 동시집을 한 놈에 한 권씩 주고 몇 바닥씩 베껴 쓰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그 반성문들은 그저 죄송하다 일 때도, 원인이 나올 때도, 앞으로 같은 상황이 생길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대책도 있었고 누가 보면 반성문인지도 모를 곱고 고운 동시 등 다채롭다면 다채로운 내용들로 채워졌고 이것도 글쓰기라고 조금씩이나마 필체와 필력이 좋아지는 것도 보이니 이거야 말로 웃픈 상황이 아니고 무엇일까.


  기실 이 글을 쓴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아이들이 반성문을 쓰면 종이 위에다 '반성문' 이라고 쓰고 글을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자꾸 '방선문' 이라고 쓰는 것이다. 혼나고 있는 와중에 맞춤법을 고치라고 할 수도 없고 작게 소리내 발음해보니 아이들이 저렇게 알 수도 있겠구나 싶어 상황이 다 마무리 된 후에는 바른 맞춤법을 알려주곤 했었다. 단번에 고쳐지진 않았다. 어느 날 또 두 놈이 사이좋게 혼이 나고 나는 여지없이 반성문을 쓰라고 시켰다. 좀 지나니 쭈뼛쭈뼛 종이를 들고 다가오길래 나는 계속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로 '소리내서 읽어봐' 라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큰 아이가 주눅이 들어서 글을 읽기 시작하는데 나는 종이 뒷면에 아이가 쓴 글이 희미하게 비치는 걸 보고 아이고야 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진지한 글에 비해 그렇지 못한 맞춤법이여.. 아이의 낭독이 끝난 후 말했다.


  "그래, 알겠어. 근데 아직도 방선문이라고 쓰면 어쩌니.."


  그러자 큰 애가 다급하게 제 동생을 보며 한 마디 한다.


  "아, 미안해."


  보아하니 동생은 반성문이라고 올바로 쓴 것 같은데 한 살 많은 큰 애가 그거 틀렸다고 방선문이 맞다고 해서 작은 애는 지우고 다시 쓴 것 같았다. 작은 애는 억울해 하고 큰 애는 난감해 하고 나는 이걸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하나 고민이 되고.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반성문은 아직도 업데이트 되고 있다. 잘 지키라고 보이는 곳에 떡하니 붙여놓았지만 나도 잘 안 보고 아이도 잘 안 본다. 나도 어릴 때 신나게 혼나 봤지만 반성하기 보다는 혼이 났다는 기억이 더 큰데 우리집 아이들도 그럴까? 날마다 생각한다. 나는 뛰어난 머리도 물려주지 못했고 좋은 비율이나 큰 키도 물려주지 못해 대신 매일 사랑을 주고 싶은데 이것이 참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아는데 잘 실천이 안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썼으니 오늘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자, 뽀뽀해주러. (2021.3.1)

이전 01화 들어가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