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목표나 한계를 정해놓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 있다. 되는 만큼만 하면 되지 억지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몇몇 일은 먼저 설정을 해 두고 거기에 맞추려 노력했을 때 그러지 않았을 때 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첫번째로 운동이 그렇다. 한 번에 길어야 5분 정도니 평생을 할 줄 알았지만 몇 달 하고 그쳤던 플랭크는, 1분도 못 버티던 초창기부터 최종 목표는 5분이었다. 5분을 겨우 할 때도, 5분이 가뿐할 때도 있었다. 5분을 정해두지 않았다면 그에 도달하는 날은 몇 되지 않았을 것이다. 걷기나 뛰기 기타 다른 운동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번째는 글쓰기다. 작년 한 해 동안 뛰어쓰기와 공백 포함하여 800자 글쓰기를 거의 매일 했다. 내가 쓰는 글의 양이 얼마나 되는 지 헤아려 본 적이 없으니 초반에는 글을 다 쓰고 나면 복사해 몇 자나 되어보는 지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할 말을 다 했는데도 800자에 못 미칠 때는 허탈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적을 말이 떠올랐다. 억지춘향으로 채운 적도 많았지만 점차 어느 정도의 이야깃거릴 부려야 양이 채워질 지 감이 왔다. 이제는 글자 수를 세지 않는다. 오히려 수다가 길게 이어져 읽는 사람이(훗날의 나를 포함해)지치지 않을까.
마지막은 아이를 사랑하기이다. 사랑을 정해놓고 해야 하다니 오해가 생길 수 있겠다. 하지만 내게는 그랬다. 사랑한다고 크게 말해야지, 꼭 안아주어야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 사과만 해야지, 단서를 달지 말아야지, 잘못한 일만 말을 하고 감정은 담지 말아야지, 뽀뽀를 해 주고 무조건 너를 사랑해 라고 소리내어 말해야지 라고 정해놓아야 했다. 그래야 실천이 되었다. 그리 하지 않으면 내 눈에 들보는 보지도 못하면서 아이의 작은 실수에 벼락같이 화를 냈다. 내 오해에서 비롯된 일에도 사과를 하지 않는 날이 늘었다. 안아달라며 다가와도 시늉만 할 때도 있었다.
소리내어서 엄마가 미안해 너를 사랑해 라고 외치면 정말로 그 순간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그래 뭣이 중헌디'의 마음이 되어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한 밤에는 늘 반성문을 썼지만 후회로 시작해 내일은 더 소리내 말해야지 하는 다짐으로 마무리 지었다.
평소 말이 많은 편이지만 미처 하지 못한 말이나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은 글로 적어버릇 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 많은 글들 속에서 나는 천천히 성장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웠다. 이 때에 아이들에 대해 쓴 글은 색으로는 파스텔톤, 만질 수 있다면 솜사탕, 표정으로는 단연 미소이다. 쉽게 솔직하게 할 수 있었던 사과도 이때는 자주 보인다.
허나 지난 일 년간 매일 썼던 글에서 아이들에 대해 쓴 부분을 추리며 읽어보니 상당부분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런 이야기만 모아놓아도 될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혹시 나중에 아이들이 보게 된다면, 엄마가 자기들에게 이렇게 화만 내었는가 하며 원망하면 어쩌지. 그러나 곧 다시 생각했다. 몇 백일 동안 글을 썼는데 그 중 몇 십일이면 그 나머지는 다 좋은 날이 아니었을까. 그리 믿고 싶다. 그리고 그게 아마 사실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