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무엇으로 살까? 나는 빼도 박도 못하게 마흔이 넘었으니 감히 인생을 말의 서두에 넣어 본다. 깊은 밤을 지나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시각에 벌겋게 눈을 뜨고 있으려니 나는 무엇으로 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감동으로 산다. 나는 몇 살부터 감동으로 살았지? 아마 내가 인생이라고 부르며 떠올리는 시절은 최근 십 년일 것이다. 이 양반을 만나 결혼해 살며 내 배 아파 두 아이 낳아 지지고 볶고 살아온 시간들 말이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어 하며 안방 문을 빼꼼 여는 아이의 말에 감동을 받는다. 엄마가 제일 예뻐 하며 미소짓는 아이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꼬치꼬치 물어보는 호기심에 건성으로 대답해도 응 그렇구나 하며 대답하는 아이의 끄덕임에 미안해하며 감동을 받고 열에 들끓어 선잠을 자다 깨다 반복하며 거실에 나와선 엄마 도대체 지금 새벽 몇시인데 하며 다 큰 사람마냥 멀쩡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도 결국 느껴지는 건 감동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나? 나는 귀가 열려 있는 편이다. 이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남편과 작은 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그들의 닫혀 있는 귀에 대한 애로사항은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아무튼 나는 귀가 열려 있어 아이들이 집에서 나누는 대화와 다툼과 반목과 갈등을 고스란히 듣게 된다. 그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무관심이고 중재와 호통과 벌칙 정도이다. 아, 쓰고 보니 이건 마치 코로나로 인해 생기는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과도 같구나! 열나면 해열제, 가래 나오면 항생제!
이번 한 주 아이는 아파서 집에 있고 나는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자체 휴가를 내었다. 이틀은 온 가족이 집에 있었고 다음에는 각자 등교와 출근을 마친 그들을 빼고 우리 둘이서 점심 나절까지 잠을 잤다. 또래보다 천천히 키가 자라서 훨씬 어릴 적 소매를 접어 있었던 내복을 여적 입고 있다. 당연히 이제는 소매는 안 접고 무릎이며 손목 부분이 잔뜩 해졌다. 그 옷을 입고 아이는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격리는 하고 있으나 열도 내리고 식욕이며 기분이 원상태로 돌아와 마치 저와 나는 휴가인 듯 했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 시절에도 이렇듯 저와 나는 함께였을테지만 지금이 당연히 훨씬 더 좋다.
나는 계속 아이 얼굴을 매만지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정말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여전히 아기같고 여전히 엄마 사랑해를 외쳐도 말이다. 몇 살의 어떤 모습이어도 나는 세상에 둘도 없을 내 아이를 변함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을 이번에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실 뭐든 그렇지 않은가. 숨쉬듯 있으면 모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엄청난 감성에 넘쳐 있으니까 이렇게 마음껏 쓸 것이다. (202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