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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힘 Strength

내 안의 사자와 친해지는 법

by 하치


투구도 무기도 없이 머리와 허리에 꽃을 두른 여성이 마치 순한 양을 다루듯 사자의 눈을 온화히 아이컨택하며 억센 이빨 가득한 맹수의 입을 부드러이 눌러 다물게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마법사와 동일한 무한대와 총명함을 상징하는 뫼비우스 띠가 있고, 이는 모양이 흡사한 8을 의미하기도 해요.


사람들은 보통 총명함을 타고난다고 하지만 여기서의 총명은 단순히 똑똑함을 넘어 지혜로움을 나타냅니다.


즉 지혜로우려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현상에 의문을 던져야 합니다.


남들이 내린 정답에 안주하지 않고 다각도로 바라보는 자신의 안목을 믿고 물을 줄 안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힘을 지닌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에요.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앎으로 접근하니까요.


숫자 8은 뫼비우스의 띠가 이어진 것처럼 중간에 끊김 없이 차근차근 인내심과 자제력 있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도 강합니다.


8번 힘카드는 단순히 물리적 힘뿐 아니라 정신적인 힘을 다룰 줄 아는 힘센 여자 도봉순입니다.

여인은 사자를 힘으로 길들인 게 아니에요.

힘으로 제압했다기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상대가 진정 무엇을 원하고 결핍을 느껴 이빨을 드러내는지 주의 깊게 살펴 부드러움과 포용력으로 다가갔기에 가능한 일이랍니다.


그것은 계락과 전략의 채찍과 올가미 없이 내면에서 우러나온 부드러움이 바탕이 된 자신감과 용기로 다가갔기에 사자가 꼬리를 내리고 기꺼이 복종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단단하고 척박한 땅에서조차 부드러운 꽃이 피어나듯 자연스럽고 경탄할 만하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겉모습의 사나움 너머 부드러운 성정을 간파했던 벨이 주인공인 미녀와 야수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이 카드에서의 사자는 외부의 위험한 적이란 뜻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내면에서 으르렁대는 욕망이나 잠깐이라도 한 눈 팔면 언제든 덮쳐 들어 파괴할 수 있는 야수성, 또는 억누르고 억제시켜 숨기려 하는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상징기도 합니다.


즉 사자의 원초적인 욕망이나 본능을 여성이 의미하는 의지, 신념, 인내로써 통제하고 조절한다고 할 수 있지요.

여성과 사자를 하나로 보고, 욕망과 본능을 조절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라고 하지요.


그렇다고 사자를 무작정 우리에 가두고 단시간에 제압하려 한다면 그 본능이 왜곡될 수도 있어요.

사실 무의식 속의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서 넓은 초원이 영역이며 삶을 지탱해 주는 생명력과 에너지를 지닌 우리 내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사자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아는 겁니다.

원하는 것을 모른 채 배고프다는데 쓰다듬으면 으르렁대지 않을까요.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림 하는 것도 8번 힘 카드가 주는 메시지입니다.


옛날에 바다 새가 노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하여 즐겁게 해 주고, 쇠고기와 양고기, 돼지고기로 안주를 삼도록 하였다. 새는 눈을 멍하니 뜨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 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서 사흘 만에 죽어 버렸다

옛날에 장자를 읽던 중 마음에 와닿던 얘기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베풂에도 상대에 맞지 않은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기 십상이어서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비단 상대뿐일까요?

자기 자신의 욕구와 결핍의 원인을 간과한 채 그저 외부의 치장이나 모양새를 뽐내는데 진을 빼고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쓰러집니다.

내 안의 새를 즐겁게 한다면서 소화 못할 고기와 소음인 음악과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술잔치를 벌여 왁자지껄 혼을 쏙 빼놓지는 않나요?

파티 안에서 흐린 눈으로 공허함에 날개 파닥일 힘도 남겨 두지 않았지 않나요?

그러면 내면의 새는 온갖 자극에 찔러 죽어버릴 수가 있어요.


내면으로 돌려 한 순간 자신과 타인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됩니다.

한 순간 지저귀는 말을 듣기만 해도 됩니다.


귀는 열고 입은 닫습니다.


어느 순간 서로의 호흡소리만 들리고 눈가에 이슬 맺히듯 서로 숨죽여 촉촉이 존재를 귀 기울이게 됩니다.


거기에는 다음 행동에 대한 강제도 규칙도 없습니다.


내 안의, 또는 그와 나의, 맹수의 공격성은 무장해제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게 됩니다.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이 펼쳐지도록 내비두세요.


道중에 최고의 도는 내비도!





내 안의 사자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초원의 왕으로서 자유로이 뛰어다니듯 삶을 지탱해 주는 활기와 에너지를 주는 존재임을 또 무시하지 마세요.


EBS지식채널 e에서 육식하지 않는 사자 타이크를 소개한 적이 있어요.

젖을 떼고 이유식을 할 때도 타이크는 피 한 방울 섞인 우유를 마시기만 해도 토해버렸고, 애착인형을 치우고 고깃덩어리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는 거부의지를 보였습니다.

타이크는 자신이 화상을 입었을 때 곁에서 상처를 핥으며 곁을 지켜주었던 고양이 핑키를 누군가 훔쳐 갔을 때 슬픔에 몇 달간 곡기를 끊고 울어댔다고 해요.

당나귀에 차여 혀가 찢어져도 참새들이 먹이를 뺏어가도 이들이 짓궂게 괴롭혀도 타이크는 화내지 않았다고 해요.


그를 길렀던 웨스트보 씨는 말했습니다.

"완벽만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두려움이 없어지면 살육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타이크는 열악한 환경의 동물원에서 태어나 엄마사자가 받는 냉대와 가혹한 처우를 목격했음에도 증오와 두려움의 장막을 찢고 사랑의 들판을 달리기로 선택했습니다.


동물들은 선과 악, 흑과 백의 진실을 찢어놓는 분별이 없어요.

사자가 어데 무작위로 사냥을 즐기던가요?

그들은 배만 채우면 아무 욕심도 없이 광합성하며 평화로이 뒹굴거립니다. 배부르면 사슴이 지나가도 꿈쩍 않아요.

타이크의 경우 육식에 대한 욕망조차 없이 채식으로도 생존이 가능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과식의 탐욕으로 먹이 사슬 피라미드에 최고 포식자 왕좌에 앉아 있어요.

내 안의 사자, 세평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자는 먹을 만큼만 주어진 데로 사냥에 충실할 뿐 살육에 발톱세운 짐승이 아니에요.


더 직관적이고 본능이 왜곡되지 않은 사자를 길들일 대상이 아니라 내 안의 천연덕스런 존재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까요.


자아의 개념으로 물들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진실된 자연스러움을 데 길들일 데가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본능과 그때그때의 관념에 때 묻지 않는 반응을 하는 내 안의 사자를 안아주세요.


여러분의 무의식 우리에 꽁꽁 가둬놓은 맹수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니 두려워 마세요.

그와 함께 불굴의 열정과 용기로 억압 두려움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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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대구에도 주중에 눈이 함박함박 내렸어요.

가끔 몇 송이송이 도둑눈으로 잠시 마음을 훔치다 가더만. 꼬리뼈가 강아지들 못지않게 덩싯덩싯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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