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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정했다! -5화

호랑이쌤의 포효

by 하다

본격적인 수업 전 준비 운동이 한창일 때, 갑자기 "첨벙"하며 요란한 물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초급반 쌤이 입수하는 소리였다.



'아니, 저렇게 티를 내며 들어와야 하나? 은근히 관종이시란 말이지. ㅋㅋ'



티 나지 않게 속엣말을 했다.



오늘은 우리 호랑이쌤 이야기를 좀 할 작정이다.

몇 달을 같이 수영하며 친근해진 초급반 언니들, 어머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빠졌지만) 잘 웃고 늘 다정한 언니 A가 호랑이쌤께


"우리 오늘 밥 먹으러 가요~ 같이 가실래요?"

라고 말하자 쌤이 말했다.


"맛있게 먹고 오세요오~ 내 욕 많~이 하고~"


갑자기 언니들이 오늘 쌤 욕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욕은 아니지만 쌤 뒷담화를 좀 해볼까 한다.

'욕이나 뒷담화나, 뭐가 다르냐?'라고 물으신다면 욕은 비난하는 거지만,

뒷담화는 그냥 없는 데서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거라고나 할까?






아침 9시부 수영에 가면 쌤 세 분이 계신다.

초급, 중급, 상급반 선생님. 모두 남자 강사이시다.

그중에서 우리쌤이 단연 비주얼 갑이다.

훤칠한 키에, 구릿빛 피부(아니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식상한 표현들이다 싶겠지만 이 표현이 딱인 걸 어째?)

이목구비도 뚜렷하다. 쌍꺼풀 없지만 눈도 선하고 큰 편이다.

골무 같은 수모대신 쓴 모자도 패셔너블하게 보인다.

목소리도 듣기 좋은 중저음에 딱 보기 좋은 근육 옷도 입고 있다.

아줌마 회원들이 퍽 좋아하겠다 싶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숨쉬기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가라앉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발차기하느라 여념이 없지 않았다면,

나도 살짝 설렜을지 모른다. 아쉽게도 나는 초기에 생존하느라 너무 바빴다.




하지만 난 곧, 우리 쌤을 호랑이쌤이라 부르기 시작했고(물론 나 혼자)

아줌마 회원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음과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바로, 말투!


우리 호랑이쌤은 같은 말을 해도 삐딱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호랑이쌤한테 들은 최고의 칭찬은


"그렇지!" , "좋아졌네!"


정도이다.



초급반이니 당연히 실수할 수 있고

자세가 좀 웃길 수도 있고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호랑이쌤은 매몰차다.


"아니 이게 이게 안돼?" (자유형에서 숨 쉴 때 팔에 얼굴을 붙이고 하는 동작을 보여주며)

"아니 왜 기도를 하고 있어?" (평영에서 손을 모으는 내 동작을 보고)

"아니 왜 오케이를 하고 있어~손을 쭉 펴!" (자유형 팔동작에서 내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걸 보고)

"엉덩이를 왜 이렇게 내밀어~ 엉덩이에 자신 있어?" (A언니는 원래 심각한 오리궁둥이임)

"키판 빼지 마요~ 개판되잖아~~~~!" (수업이 끝나고 호기롭게 키판 빼고 자유형을 시도한 나를 보고)

"발 차 발 더 차! 더 차아~~~~~~~~~!!!!" (배영에서 다리 힘 풀려 다리가 내려가는 회원에게)

"서지마 서지마!! 아우 씨~!!!" (끝가지 못 가고 중간에 서는 회원에게 물 싸데기를 날리며)

"팔 펴고 팔 펴고~~~!! 으이구!" (배영에서 팔 동작이 어설픈 회원 얼굴에 물총을 쏘면서)

"아니 왜 이렇게 뻣뻣해~!!!" (접영 웨이브 연습 중인 나에게.. 우씨)

"하아........" (만년 초급반에 계신 회원분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

"빨리 안 오고 뭐 해~!" (25미터 끝까지 가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우리들에게 호통)

"눈썹이 왜 그래?" (눈썹 문신이 옅어서 갈색이 된 회원에게)

그 뒤에 이어 내가 "쌤 이제 뭐 해요?"라고 묻자

"자기는 눈썹을 좀 해~ 눈썹 어디 갔어?"(헐!)



이렇게 여성회원들에게 조심성이라든가 배려라곤 없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물총을 쏘아대니 인기가 좋을 리가!



이렇게 말하니 우리 호랑이쌤 너무 악덕 강사 같지만

그냥 그 사람의 스타일일 뿐인 걸 또 곧 알게 됐다.

가끔가다 투박한 칭찬으로 으쌰으쌰 해주기도 하고

버거워 보이면 키판을 살짝 당기고 발을 은근슬쩍 밀어 도와주기도 한다.

내가 쥐가 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다리를 눌러주며 걱정해 줄 줄도 아는 사람,

조금 오랜만에 가면 왜 안 나왔냐고 어디 아팠냐고 챙길 줄 도 아는 사람임을 알고 나니

호랑이쌤의 호통 소리가 이제는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하는 잔소리처럼

다정다감하게 들린다.



sticker sticker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시는

호랭이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포효할 수 있길 바란다.






다음화에서는 수영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캐릭터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제가 이래 봬도 심리학 전공입니다! ㅋㅋ)

만괂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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