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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정했다! -6화

말풍선을 채우다 관심의 찾을모를 찾다.

by 하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고야 마는 감정 변화 따위를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혼자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말풍선을 띄운 다음 채워 넣어 보는 거다.



나이가 들면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타인과 한자리에서 무언가 활동하고 소통할 기회가 희소해진다.

수영장에 가는 또 하나의 재미가 이 말풍선에 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지만 분명 무언가 말하고 있는 그 표정들을 엿보는 재미!

(그렇다고 내가 변태는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나는 관찰할 뿐)

초급반 터줏대감 우리 반장님은 유일하게 말풍선을 채우기 어려운 사람이다.

늘 같은 표정이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처음 뵀을때부터 지난 수요일가지 한결같이 세상 모든 이를 품을 것만 같은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 미소 오른쪽 귀퉁이쯤엔가 슬픔이 어른거린다고나 할까?


초급반 터줏대감이란 말에 이미 예감했겠지만, 어떤 신입도 반장님보단 발차기가 빠르다.

만년 초급반에 만년 꼴찌석인 거다.

반장님을 바라보는 호랑이 선생님의 눈빛을 보면 오만가지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안쓰러움, 답답함, 당혹, 좌절?



그래도 반장님은 오히려 숨이 가빠 버거워하는 신입을 다독여주고 정말 빨리 배운다며 용기를 북돋워준다.

내가 첫 시간 머리를 물속에 넣자마자 빼며 힘들어할 때도 지긋한 눈으로 나를 응원해 주셨던 거 같다. 그래서 나도 요즘은 그 응원과 칭찬을 돌려드린다.


"와 한 팔 접영 많이 정말 많이 느셨네요!"


그리고 조금 주제넘지만, 오른쪽 미소 귀퉁이에 걸려있는 슬픔이 사라지길,

말풍선을 다양한 말들로 채울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정반대의 캐릭터는 누굴까 생각해 보니 쥐잉할머니가 떠오른다.

쥐잉할머니의 말풍선은 매우 자주 바뀔뿐더러

매우 쉽게 채울 수 있다.

그만큼 아닌 척하시지만 표정에 기분과 생각이 다 드러나는 투명한 사람이다.

카멜레온이 배경색에 따라 몸색을 바꾸듯 쥐잉 할머니는 속마음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호랑이 선생님이 다른 회원에게 조금 오래 집중하는 듯하면 뾰로통해져선 삐친 표정이 된다.

그럴 때면 내 맘대로 이런 말풍선을 만들어 본다.


'아니 나는 개인 레슨을 돈 내고 하는디 저짝은 아주 개인 레슨을 받고 있네잉! 아이 약 올라!'

선생님이 뒤에서 발을 쑥 밀어주면 "와~ 재밌다잉 나는 이게 제일 좋아잉~"하며

어린아이 못지않은 천진난만한 표정이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좀 자주 해주지잉~' 말풍선을 만들고 혼자 웃는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회원이 뒤에서 매섭게 추격해 오면

"와~ 빠르다잉~ 자리 바꿔줄까?" 하시지만 표정은 이미 속상하다.

'내가 쫌만 젊었어도... 휴...'

기분이 좋을 때면 아무나 붙잡고 칭찬을 쏟아놓기 바쁘신데 컨디션이 안 좋거나 어딘가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날엔 너무 조용해 어색할 지경이 된다.




참 극적으로 다른 두 분은

이제 15명 정도 되는 초급반에서

가장 뒷자리 14,15자리에서 사이좋게 발차기를 하고 자유형을 하신다.


가끔 두 분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지 몹시 궁금하다.

반장님은 쥐잉 할머니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부러워하실까?

좀 과하다 싶은 오지랖을 불편해할까?

쥐잉할머니는 반장님의 기운 없는 말투와 자신 없는 표정이 답답할까? 진중하다고 생각할까?



사실은 이 생각들은 모두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아이처럼 투명하고 쉽게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쥐잉 할머니가 재밌고 귀여워 보일 때도 있지만,

과하다 싶어 불편할 때가 있었다.

반장님의 다정하고 차분한 표정과 말투가 맘을 편하게 해 줄 때가 많았지만

그 표정 이면에 있을 진짜 감정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타인을 대상으로 시작된 관찰의 표적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이니? 하고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생각하다 보면

내가 너무 가볍게 뱉은 말과 함부로 지은 표정들이 떠올라 두려워진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무례하거나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찾을모가 충분하다.

상대의 기분과 상태를 살필 줄 알고 내 태도와 행동도 돌아보게도 한다.

개인주의가 극심한 요즘 우리는 지나치게 서로 예의를 차리고

거리 두기를 하며 타인에게 무관심 한 건 아닐까?

조금은 더 관심을 가져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표정과 상태를 살핀다.

말풍선만 채우는 게 목표는 아니다.

나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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