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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정했다! -4화

나가 죽을까?

by 하다



운전을 처음 배울 때는 웬만해선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

운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자신감이 살짝 붙을 때쯤 사고가 나기 마련이지.

연애 초기에는 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서로에게 맞춰주고 위해주면서 넘어간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해지면 말이 헛 나오고, 행동에도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지.

그래 모든 문제는 방심에서 시작된다. 익숙함은 때론 사람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방심하게 만든다.




와~ 나 진짜, 나가 죽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든 일도 딱~ 그때쯤 일어났다.

수영장에 갈 준비물을 챙기고, 재빠르게 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능숙하게 수영복을 입고(1화, 공중부양 당하다 참고)

어렵지 않게 수모를 쓰고(1화, 공주부양 당하다 참고)

유유히 수영장 안으로 들어갈 때쯤,

그러니까 수영 시작, 딱 한 달 반(명절 등으로 빠져 날수로는 12일 차)되던 날이었다.









아침에 여유 있다 싶어 청소기에 세탁기까지 돌리고 나니

수영 시간이 촉박했다.


미리 챙겨둔 수영가방을 의심 없이

('간이 부었나?')
달랑 들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하나하나 체크한 뒤 나가는 편이다.


차시동을 걸고

‘오늘은 이무진 노래를 들어야지!’

빅스비에게 이무진 노래 플레이를 부탁했다.

이무진의 '청춘만화'가 수영장에 가는 길을

더 활기차게 만들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한 지

2분 만에 아차 차했다.

‘회원카드를 또 빠트렸네!’

벌써 네 번째다...

깜빡했다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말을 또 해야 한다니...


'아 그냥 좀 정신없는 여자 되면 되지 뭐.'

걍 고!


데스크에서 바보 같은 웃음으로

카드 또 없음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

락커 키를 받았다.

분명히 내 이름을 다른 회원보다 빨리 외우셨을 거다. 쩝.



수영복을 챙겨 들고

샤워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두 번째 아차차!

머리끈이 없었다.



‘이런 밥통!’


잠시 망설이다가 누가 버리고 간 고무줄이 없나

거울 앞 화장대를 기웃거렸다.

머리를 말리고 있던

천사 한 분(당시 내 눈엔 천사로 보였다)이 뭘 찾으시냐 물어왔다.


"아, 고무줄을 안 가져와서요. ㅎㅎㅎ"라고 말하며

또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더니

그 천사가 손목에 끼고 있던 고무줄을

망설임 없이 빼주었다.


어떻게 돌려드릴지 묻자 그냥 가지시라고 했다.

절대 먹고 떨어지라는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천사에게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샤워실로 들어가며 수영복 가방을 열었다.


수영복 가방을 들여다보고 난 나는

한참을 아연실색해 눈만 큰큰하고 있었다.

수건이 없었다.

다들 수건을 하나씩만 가지고 다니는데 빌릴 곳도 없고

쓰던 수건 한 번만 빌려달라 하긴 너무 구차했다.


‘그래 수영복을 입은 상태로 데스크에 부탁해서

수건하나 사면 되지. 괜찮아 괜찮아.’



나를 다독이며 수영복을 입고 수업에 들어갔다.

5분 지각,

준비 운동도 못하고

자유형 발차기 한 바퀴만 하고

바로 자유형을 하려니 호흡이 꼬이고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45분이 3시간처럼 느껴지는 유난히 힘든 수영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데스크에 수건 값을 지불했다.


5,000원!


쿨하게 결제하고 왔지만 집에 와서 잔뜩 쌓여있는

수건을 보니 괜히 속이 꼬인다.

오천 원이 큰돈도 아니고 커피 한 잔 마셨다 치면 그만이지만

카드, 고무줄, 수건 쓰리콤보의 타격이 속을 더 꼬이게 했다.



나의 허당미를 인간미로 포장하며 웃어넘기려 애쓰지만

그날은 쉽지 않았다. 현타가 제대로 온 거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바보짓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입고 간 반팔 티셔츠로 머리를 닦고 있었다는...




다짐이야 깨지라고 하는 거지 뭐,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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