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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정했다! -2화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by 하다






9월까지는 아직 수영장 시즌에 속해서인지

초급반 수강생들이 꽤 많았다.



가장 넓은 첫 번째 레인이 초급반 레인이었다.

대부분 검은색 원피스에 나처럼 허벅지까지 가린 수영복을 입고 있어 웃음이 났다.


'다들 짰나? 피식, 그러는 너는? 푸핫'


심지어 나랑 똑같은 수영복을 입은 분도 있었다.


'젠장! 그래도 핏은 내가 좀 더 낫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을 뿐이지만)



수영 못해도 쌈빡한 수영복 좀 입으면 어때서

하나같이 시커먼 수영복에 검은색이나 흰색 모자만 쓴 건지...

수영장은 튀는 걸 경박하게 여기고 꺼리는 우리 문화가 잔존하는 곳인가 보다.

(이것도 내 멋대로 해석)



그 무리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2~3명이 있었다.

초급 중에서도 1~3번째 주자들이다.

꽃무늬나 원색, 아래위 모두 훅 파인 수영복을 입고

여유롭게 호흡하며 유유자적 팔을 젓는데 쭉쭉 나아가는 에이스들!

이미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영법을 모두 익혀 중급반 진급만을 앞두신 분들이다.

부러움의 눈길을 서둘러 거두고 강사님의 설명에 집중해야 했다.



말로만 듣던 ‘음파’ 타임.

나의 ‘음파’ 동지는 물속에서 ‘음~~~~~~~~~’한 다음, 고개를 돌리며 ‘파하!’하는 음파 세트를 어렵지 않게 익혔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운 적이 있다고 함)

‘음~~~~~~~~~’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음~~’만 하면 숨이 막혀왔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 보단 내가 이걸 못해 낼 것만 같은 두려움이 더 컸다.


‘망했네?’


물속에서 혼자 머리를 급히 빼내던 우리 막둥이의 모습과 그걸 보고 혼자 낄낄거렸던 과거의 내 모습이 물속에 동동 떠다녔다.


‘그때 내가 잘못했네?!’


그러나 끈기 없기로 유명한 막둥이도 결국 해냈지 않았는가?

나도 끈기 하나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평소 유산소 운동이라곤 안 하니 호흡이 달릴 수밖에 없다.

내가 너무 빨리 머리를 내밀자 호랑이 강사님(호랑이처럼 큰 소리로 면박을 줘서 내 맘대로 지은 별명)이


"아니 왜 벌써 나와?" 하며 내 머리를 손수 눌러 주셨다.

이번에는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은 두려움이 더 커졌다.


여기서 팁!

물속에서 숨을 뱉을 때는 천천히 길게 뱉어야 한다.


나는 물의 부력을 이길 만큼 세게 뱉어야 코로 물이 안 들어올 거 같은 생각에

힘을 주어 뱉었고, 그래서 길게 뱉기 힘들었던 거다.

길게 천천히 뱉기는 그 뒤로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음파'만 하다 죽을 거 같을 때쯤,

호랑이 선생님은 발차기를 가르쳐줬다.

하체 운동, 손 놓은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니

종아리 살도 뼈와 분리된 듯 출렁이고

허벅지 살도 힘없이 흐물거렸다.


그러니 발차기 100개도 채우기 전에

다리에 물귀신 백 마리는 붙은 듯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시계만 노려보던 학창 시절처럼

애꿎은 시계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 노래 가사처럼


'시간아 달려라 시계를 더 보채고' 싶었다.


첫 수영 강습이 끝나고 나오는 내 모습은 처참했다.

어기적어기적 절뚝절뚝.

아이고아이고(앓는 소리).

거울 속엔 수경과 수모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너구리 한 마리.



훗날 자유형에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초급 첫날 강습을 마친 한 수강생의 얼굴에서도

그 너구리를 보게 된다.



왜 초급자만 너구리가 되는지

그제야 나는 깨닫는다.



새 수경과 새 수모, 유죄.








다음화 예고


선생님 앞에선 모두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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