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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 정했다! -1화

공중부양 당하다

by 하다

수영 첫날이다.


수영복, 수모, 수경 그리고

샴푸, 바디, 수건.. 머리 끈.


완벽해. 출발!


수영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걱정 말풍선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쉬 마려우면 어쩌지(나는 화장실을 좀 많이 자주 간다)?

수모 쓰기 어렵던데(집에서 써보는데 너무 힘들었음) 못쓰면 어쩌지?

다리 달린 원피스 수영복은 처음인데 잘 안 올라가면 또 어쩌지?

무엇보다 큰 걱정은 "음~파~ 음~ 파~"다.

재작년, 우리 집 삼 형제는 다 같이 수영을 배웠는데

막둥이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음파음파를 했던 모습을 보고

나는 밖에서 신나게 웃어젖혔었다.

혹시... 내가, 그러면 어쩌지? 물속에 머리도 못 넣어 보고 첫 수업이 끝나면 어쩌지?





머리를 탈탈 털어 걱정을 쫓아버리고 일단 수영장에 들어섰다.

락카키를 받아서 탈의실로 들어갔다.

목욕탕과 또 다른 느낌의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수업을 마치고 씻는 사람들과 다음 수업에 들어가려고 씻는 사람들로

빡빡한 샤워장 안에서 속으로 '헐'을 몇 번이고 뇌까렸다.


'맨날 이렇게 두 번 씻어야 한다고? 테러블!'




시작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빨리 씻고 수영복도 입고 수모도 써야 한다.

발가벗은 채로 누가 먼저 나올지 눈알을 굴리며 열심히 탐색한 뒤

엉거주춤 한 분 뒤에 줄을 섰다.


겨우 샤워기를 하나 차지하고 빠르게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드디어 수영복을 입을 시간.

다리를 조금 벌리고 서서 무게중심을 잘 잡고

수영복에 한 발을 끼웠다. 반대발도 조심스레 수영복에 성공적으로 넣었다.


'뭐 할만하네?'


이제 다리에 끼워진 수영복을 끌어올려 입으면 된다.

수영복을 야무지게 잡고 힘껏 끌어올렸다.

내가 준 힘에 비해 수영복은 턱없이 조금 올라왔다.

다시 힘을 줘서 잡아당겼다.


이게 머선 일이고?


새 수영복의 짱짱함과 초보의 미숙함은

담합을 한 듯 골반에 정착해 버렸다.

나는 생각지 못한 수영복의 저항에 당황했다.



그 때다!

갑자기 엄청난 힘에 의해 나는 잠시 공중 부양 상태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영복은 어느새 가슴 아래까지 올려져 있었다.

경황이 없었지만 분명 그 '어느새'는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는 시간보다 빨랐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니 엄마뻘 되어 보이시는 한 어머니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서서 다시 샤워에 열중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애매하게 허허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도와줄까?"라는 말을 미리 해주셨다면 좋았을 거란 말은

속으로 삼켰다.



수영복 입기 클리어!

이번에는 수모다.

신랑이 가르쳐준 대로 윗부분을 조금 접고

이마부터 수모를 눌러썼다.


팅~

역시 짱짱한 새 수모는 곱게 내 머리를 감싸주려 하지 않았다.

탁월한 탄력으로 요리 팅, 조리 팅 나를 약 올렸다.

수업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았았는데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조금 울고 싶어졌다.



이대로라면 1시간을 해도 똑같을 거 같았다.

누구라도 도와주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저 오늘 첫날인데 수모가 너무 안 써져요. 하하하하"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우리 사회는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구나!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동정하고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영장 샤워실 안에는 확실히 있었다.)

인상 좋아 보이는 여자분이 방법을 알려주다가 (답답했는지)

직접 씌워주셨다. 정말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연신 감사인사를 하고 드디어 수영장 안으로 입수(성) 할 수 있었다.



수영 수업 시작도 전에 이미 운동장 열 바퀴 돈 기분이 되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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