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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Aug 18. 2023

삼신할머니 딸 좀 점지해 주세요

친딸이 없다면 나에겐 조카딸이



삼신 할머님께서 내 꿈에 나와 "둘째는 딸로 점지해 줄게"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둘째를 낳을 의향이 있다.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모 아니면 도 아니겠는가? 할머님, 도박은 안 되겠어요...




시아버님 환갑 기념으로 3박 4일 동안 다녀온 제주에서 나에게도 딸이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은 감정을 우리 큰 조카딸을 통해 실컷 느끼고 왔다. 몽글몽글해지는 감동은 딸만이 가능한 건가 라는 의문과 함께.


큰 조카딸은 평소 나와 만나면 내 손을 잡거나 나에게 놀아달라고 하거나 내 옆에 앉아서 그간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쫑알쫑알 들려준다. 작은엄마라고 부르다가도 이내 이모라고 부르기도 하는.

신생아였던 아기는 자라서 씩씩하고 당찬 걸음으로 작은엄마, 아빠 결혼식의 화동을 해주기도 했고, 친 여동생과 사촌 남동생을 둔 왕 누나로써 이제는 두 자릿수, 10대를 바라보고 있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다소 남아있어서 아주버님의 추천으로 제주 국립박물관에 들렸다. 이미 이전 제주 방문 때 와봤던 기억이 있던 조카딸은 미디어아트에 눈이 휘둥그레진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디에 앉을까?"

"작은엄마, 우리 여기에 앉아요. 작은 엄마는 여기 처음이니까 여기에 앉아야 해요."


정말 맨땅에 바로 앉아야 한다는 조카딸의 말에 그저 좋아하는 자리구나 싶어 같이 앉으면서도 저 멀찍이 벽에 등 기대고 앉은 아주버님을 바라보며 "와 명당이다!"라고 외쳤는데 얼마 되지 않아 조카딸의 마음을 알게 된 나는 미디어아트 속 파도에 몸을 싣고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친 파도 속 배를 타고 한 섬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에서 나는 내가 배 한가운데 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 우리 배 한가운데 있다! 우리 배 위에 앉아있네!"

"그렇죠? 작은엄마 그래서 제가 여기 앉으라고 한 거예요~"


이미 본 내용이라 지루할 법도 한데 재잘재잘 영상 속 내용도 설명해 주고 어디에 앉아야 작은엄마가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던 9살 조카딸의 배려에 마음이 정말 말랑말랑 해졌다.


"와 작은엄마 정말 감동했어. 정말이야. 와 너무 좋다"

"저는 저번에 와봤어요, 작은엄마는 처음이니까! 진짜 배 탄 거 같죠?"


내 옆에 딱 붙어 앉아 영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뭐가 튀어나오는지 놀라지 말라고도 말해주며 9살 조카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를 알뜰살뜰 챙겼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아주버님과 형님, 시부모님께 조카딸과 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그랬구나~라는 반응에 불과했지만 나는 너무너무 자랑하고 싶었다.



18개월 아기를 케어하면서 밥을 먹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행 첫날, 삼겹살 파티 준비로 땀범벅이 된 신랑에게 밥을 먼저 먹으라고 했다. 천천히 많이 먹고 나 교대해 줘~라고 하면서 아들 케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온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동안 아기를 식탁에 앉혀두고 후식으로 샤인머스캣을 열심히 먹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수저를 놓았고 다시 끓인 찌개를 한 그릇 퍼서 식은 고기 앞에 앉아 우걱우걱 남은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고기는 왜 식어도 맛있니.


내 젓가락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는 테이블 위에, 나의 밥그릇 옆에 난데없이 빼빼로가 등장했다.

수저 한가득, 입을 크게 벌려 밥을 먹다가 이게 왠 빼빼로야?라고 물으니,

아주 살~포~시 내 옆을 다녀간 큰 조카가 대답했다.


“작은 엄마 초콜릿 좋아하잖아요!”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면서 편의점에 필요 물품을 사러 나간다는 신랑에게 초콜릿을 부탁했었다.


“작은 엄마, 초콜릿 좋아해요?”

“응! 작은 엄마는 초콜릿에 환장해! 너무 좋아!”

라고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던 조카딸.


남겨준 빼빼로가, 조카딸의 마음이 담긴 빼빼로가

보고 또 봐도 보고 싶고 먹으면 먹을수록 아까워서 다음 날 아침까지 아껴먹었다.




팔짱 꼭 끼고, 손 꼭 잡고 작은 엄마가 좋다고 아낌없는 애정표현을 하는 조카딸을 보며 아 나도 딸이 있었더라면~ 하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았다.


나에게도 딸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삼신 할머님이 미리 언질 좀 주시면 좋을 텐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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