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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Aug 22. 2023

돌아가신 분을 계속 생각하면 안 되나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Image by congerdesign from Pixabay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 하니까 손을 네가 놔드려야 할 것 같아"






자다 깨서 목 놓아 울던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던 가족. 나중에서야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자다가 왜 그렇게 울어”


밥을 먹다가 또 꿈이 생각나서 울면서 꾸역꾸역 넣었다.


“외할머니가 나보고 아직 아니래"


마지막까지 외할머니가 사시던 집에서 친구와 놀다가 잠옷으로 입고 있던 수면바지를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벗어둔 수면바지를 외할머니께서 고이, 아주 어여쁘게 고이고이 접으시고는 방 한편에 두시곤 나에게 아직 아니라는(꿈에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메시지를 남기시곤 방문을 닫으셨다. 꿈에서도 꿈인 걸 알아서 외할머니 손 한 번만 잡게 해 달라 손을 뻗었는데 차마 닿질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는 사라지셨다.






외할머니께서 요양원에 입원 중이실 때, 그날이 임종의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날 나는 사회초년생으로 번 돈을 모아 쌍꺼풀 수술을 했고 선글라스를 낀 채 엄마와 할머니께 향했다.

기력 없으신 표정으로 내가 방문한 것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하시기에 할머니께 일명 깨발랄한 손녀의 모습을 보여드렸다.


"할머니 이거 보세요, 나 쌍꺼풀 수술 했다! 이제 짝짝이 눈 끝이에요!"


그리고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국악, 민요를 영상을 보여드리고 점심식사 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중국화요리 집에서 주문한 짜장면이 나올 무렵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간 이모께서 연락을 받으셨고 이모와 엄마는 놀랍게도 아주 덤덤했다.

난 뭘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모와 엄마의 뒷모습만 선명할 뿐.


그땐 몰랐지. 우리가 병원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할머니가 바로 임종방으로 모셔질 줄은.

띵띵 부은 눈으로 선글라스를 차마 벗지 못한 채 벽만 바라보고 눈물을 훔칠 줄은.

오자매 중 막내딸인 우리 엄마 걱정이 가장 컸던 외할머니께 걱정 말라고, 엄마는 내가 있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외할머니 볼을 어루만졌던 그날이 잊히질 않는다. 


그리고 슬프디 슬픈 날 모두가 나에게 말했다.

"넌 울면 안 돼! 절대 안 돼! 참아!"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나는 선글라스 대신 조영남 안경을 끼고 문상객을 맞이했다.

눈에는 크나큰 안대를 붙인 채. 

웃지 못할 몰골에 모두가 슬퍼하다가도 나만 보면 웃었다.


"그래, 어떻게 장례식장이 슬프기만 할 수 있겠어. 네 덕에 웃는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 밤에 혼자 자는 게 가끔 무서울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주문처럼 외할머니를 불렀고, 떠올렸고, 그렇게 또 울었다.


난 외할머니가 꿈에 나오시면 심란했던 마음이 안정되고 괜스레 날 정말 지켜보고 계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정말 힘들어할 때마다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계셨음에도 날 감싸 안아주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내가 기대고 싶을 때 날 보러 와주셨다. 


그러다 어느 날, 며칠 간격을 두고 외할머니가 계속 꿈에 오셨다.

나는 마냥 좋았지만 외할머니의 잦은 등장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혹시 나도 내가 모르게 많이 지쳐있나, 나한테 문제가 있나, 무슨 일이 생기려나.

그래서 엄마께 그간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씀드렸다. 


얼마 후 다른 이모께 전화가 왔다. 

"네 이야기 들었어, 할머니가 자꾸 꿈에 오신다면서? 이모가 그래서 외할머니 모신 절에 다녀왔는데..."


이모 전화를 받고 난 뒤에 정말 하늘이 무너져라 펑펑 울었다.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할머니를 많이 붙잡고 있는 것 같데. 할머니 좋은 곳으로 마음 편히 가실 수 있게 할머니 생각도 당분간 하지 말고. 할머니 그리워하는 것도 당분간은 마음을 접어보래. 할머니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 하니까 손을 네가 놔드려야 할 것 같아" 


"아 그렇구나... 네, 이모 노력해 볼게요" 


외할머니께서 너무 그리워하는 손녀딸을 두고 차마 떠날 수가 없어서 계속 내 꿈에 나오시고 내 곁에 있다고 메시지를 주셨나 싶은 마음에 괜스레 죄송해서, 그리고 내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억지로 접어야 해서 정말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일부러 외할머니를 생각하지 않았다. 깨어 있는 동안 계속 무언가를 했고 분주하게 움직였고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 정도로 나를 굴렸다. 


그 이후 외할머니는 한 동안 오시지 않았다. 


 




오늘은 아기를 재우다 문득 떠오른 할머니 생각에 또 몰래 눈물을 훔쳤다.

외할머니 생각만 하면 난 왜 정말 폭풍눈물이 나는 건지.

내가 외할머니에 대한 애도를 충분히 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고...

최근 몇 년간 할머니를 꿈에서 뵌 기억이 없는데 그만큼 내가 잘 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는 생각으로 할머니를 계속 떠올리거나 생각하는 일은 바로바로 접었다. 


근데 오늘은 정말 사무친다. 너무 뵙고 싶다.

꿈에 오신다면 우리 아기 자랑하고 싶다. 나도 어엿한 엄마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어본다.

돌아가신 분을 계속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근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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