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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쌤 Nov 27. 2021

고구마를 위한 작은 왈츠

젓가락 행진곡


오후 2시 40분 버스 타고 출발한다 해놓고는 주방 쓸고 닦고, 고구마 상할까 봐 씻고 다듬다 버스 한 대를 보냈다가, 가스불에 올려 찌는 동안 그다음 버스도 보낸 지난 월요일. 젓가락으로 푹 찔렀는데 쑤욱 안 들어가는 게 있어서 더 오래 쪄야 했던 밤고구마.


아직 차 안 탔는데,

부산 도착 몇 시냐고 묻는 선생님들께

고구마 덜 익어서 버스 놓쳤다 했더니 웃고 난리였다.


 "고구마가 덜 익어 버스를 못 탔다네요 글쎄."


열무김치는 잘 익었고 배도 고프고 이왕 늦은 거 고구마에 열무 올려 먹었더니 부산도 가기 싫고 궁둥이 깔고 앉아 고구마 먹고 싶은 마음만 충만.


밤고구마를 쪘어요 젓가락으로 익었는지 쿡 찔러봐요


영화, 빅,

을 다시 보면서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만났는데 장난감 공장 직원으로 채용되어 현장에서 사장과 즉석으로 젓가락 행진곡을 발로 연주하는 장면이 정말 멋있고 열정적이었다. 어느 피아노 연주보다 더 다이내믹했던 장면이면서도 둘이서 발로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는데 어떤 패기와 재기, 감동과 웃음으로 따뜻한 연주였다.


연령을 넘어 누구나 즐거워할 수 있는 음악 또는 연주의 대명사로 이 곡이 표현된 것이다.


정신연령은 아이 그대로인 채 몸만 커져버린 소년 조시는 건물 바닥에 설치된 커다란 피아노 건반을 보고 두 발로 [젓가락 행진곡]을 멋들어지게 연주한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즐거웠다.


톰 행크스를 생각하면 필라델피아, 포레스트 검프, 터미널이 생각나지만 저렇게 리듬으로 기뻐 연주하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나도 저 위에 올라서 같이 젓가락 행진곡을 두 발로 연주하고 싶었다.


전 세계에서 피아노 훈련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나도 피아노 칠 수 있다’며 농담 섞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대부분 이 ‘젓가락 행진곡’ 덕분이다.


선배님들께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부산 영도 피아노계단 있다며 거기서 놀면 되겠네 하셨다.


연극도 하고 싶고 뮤지컬도 하고 싶고 저렇게 씩씩하고 리듬 있게 살고 싶은데 고구마가 덜 익어서 부산도 늦게 도착했고


고깃집에 앉아서

사주에 화가 많은 사람과 흙이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뭘 아무리 이야기해도 화는 화가 얼굴에 표가 다 나고

흙은 아무리 뭐라 해도 느려 느려서 쨉이 안 되는 둘 사이에서 고기만 실컷 맛있게 먹고


장단 맞춘다고 젓가락을 두들겨봐도 이것은 젓가락 행진곡은 아니어라. 나는 60세가 되어도 발로 젓가락 행진곡 연주하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백화점에서 손주 손을 잡고 젓가락 행진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멋있는 간지 나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염색 체험하러 온 남의 마을 어머니들 앉혀놓고 추는 젓가락 춤. 진주실크에 녹차 염색을 하는 시간에도 체험객들에게 업! 업! 기분을 올려놓고 즐겁게 배우고 만드는 시간이 좋았던 경험 있다.


세상에 나오고 100년이 훌쩍 넘도록 ‘젓가락 행진곡’ 또는 ‘Chopsticks’는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칠 수 있는’ 피아노곡 위치를 유지하며 사랑받고 있다.


양손 한 손가락씩으로 칠 수 있을 정도며, 음표들이 2도 간격으로 진행되어 외우기 쉽다.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칠 수 있는 곡이며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피아노곡 일지도 모른다 한다.


고구마가 찔린, 고구마를 찌른 젓가락을 뺀다.

고구마를 꺼내고 바구니에 담는다. 잘 익었다.


고구마는 고맙고 젓가락은 왈츠다

리듬을 만들고 춤을 추게 한다.

행진이다. 행진이다. 하동서 행진 낙동강 건너 행진 노릇노릇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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