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작은 붕어 열 마리 샀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반은 먹었다. 봉투에 낚싯바늘을 그려 장난치면서 나머지 5마리는 낚아 먹었다. 붕어빵 가격이 점점 올라 이 조그만 아기 붕어가 한 마리 오백 원. 슈크림 반 팥 반, 손에 잡히는 대로 먹었다.
찬바람 부는 계절에는 간식도 당겨, 밥 따로 간식 따로 자꾸 무언가를 손에 쥐게 된다. 호빵은 빠르고 호떡은 아직 안 보이고 붕어빵이 먼저 나왔다. 올 가을볕은 유난히 길고 따뜻하여 대봉감이 예년보다 2주일 정도 빨리 익었다. 11월 첫째 주에수확했던 감이,벌써 홍시가 되어 머리 위에 땅바닥에 털석 내려앉는다.
아이들 만나러 간 사이 홍시 바구니가 넘쳤다.
'당신 없는 동안 가을이 왔어'
'당신 없는 동안 홍시가 익었어'
나는 파破치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 破치: 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 제주 5일 장서 파는 파치 갈치도 보았고, 오늘 따온 홍시도 파치라, 제 금을 받을 수 없어 우리 집 식탁에 왔다. 좋고 귀한 것은 멀리 간다. 팔아야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보상되고 또 다른 시장을 볼 수 있는 거다.
하나로마트안에서 사온 쌀붕어빵. 낚시바늘을 그려놓고 웃겨보았는데 별로 반응이 없었다.
하동은 대봉감의 고장이다. 화개 악양 읍 나눌 거 없이 전 마을이 감이다. 하동 사람이 홍시를, 감을 사 먹을 이유가 딱히 없다. 시댁에서 가져온 홍시는 달고 빛이 예쁘다. 1일 1 홍시. 종합비타민 챙겨 먹듯 지금은 홍시 하나로 건강 챙기는 가을. 제철 음식이 최고니 또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새가 파 먹은 듯 보이는 홍시를 집어 먹었다. 역시나 새의 입은 믿음이다. 맛있다.
대봉감 홍시를 1일 1개 먹어요. 배불러요. 감이 크고 단맛이 강해요. 껍질째 먹어요.
깨어진 것들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진심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내어주는 마음과 같다. 나 같고 너 같은 것들에 공감하고 힘 주고받으며 사는 거지. 진교 성당에 가면 성모 마리아도 계시고 아기 예수도 있어 마음을 기대고 오기에 충분한 곳이지만 예배당 옆 뜰에는 깨진 돌절구 같은 옛 모습이 있어서 기도하는 자세도 낮아진다.
어린 시절에는 탱자나무가 울타리 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노랗게 탱자가 익으면 따 먹기도 했으며 눈 다래끼가 나면 어른들은 탱자 가시로 콕 찔러 고름을 짜 주셨다. 바다에서 고둥을 잡아 삶아 까먹을 때도 탱자나무 가시가 집집마다 열 일 했던 시간이 노랗게 찌른다. 유자나무 한 그루면 대학을 한 명 보냈다는 남해안의 과실수 얘기처럼 탱자는 귀하지도 비싸지도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시고 상큼한 과일이었고 예수님 머리에 두른 가시면류관처럼, 늘 잊지 말아야 할 믿음이었다.
진교성당 마당에 있는 절구.
저녁을 먹고 잠시 바람 쇠고 싶으면 가는 대치마을. 집에서 10분 정도 운전하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찍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 아이들의 핸드폰이 내게 없는 것이 늘 아쉽지만 정기룡 장군이 태어난 마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어깨 쫙 펴지는 밤마실이다. 바다에는 이순신, 땅에는 정기룡이라 했던 전쟁의 시간이 사라지고 바다는 풍년이다.
정기룡장군이 태어난 대치 중평마을. 입구에 정기룡 장군상이 있다.
어떤 이유로 금이가고 뭉개지고 깨어졌는지 하나하나의 사정을 모른다. 정신으로도 생각해 보고 육체로도 인지해보는 시각들이 필요하다. 破치들을 대할 때는 하나의 생명체로 인지할 것인지, 그냥 생긴 그대로를 말할 것인지 여러 문을 열어놓고 들락날락한다. 破치ㅡ갈치가 그런 것처럼. 뇌와 꼬리를 잘라버린 갈치의 정체성에 대해 한 참 멍 때렸던 것처럼.결손과 과잉, 잉여 사이에 갈치를 놓고 갈치의 머리와 마음 즉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의 영역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로 남길 것인가 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