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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쌤 Nov 04. 2021

'본다'라든지 '빛'과 같은

점 하나에 님과 남이

보건소에서 독감주사 예진표 작성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 숫자 3을 8로 썼다 고쳤다. 여 씨를 이 씨라 썼다 지우고 다시 키보드를 만졌다.


눈으로 보고 쓰는 일은 자꾸 느려지고 아는 것은 많아 입은 빨라지는 내가 싫어지는 나이에 일곱 살 적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시간도 참 더디게 갔다.


돋보기에 40대 전용이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나는 마흔일곱 살. 미운 일곱 살 이라며 세 아이를 키우던 오랜 시간이 뒤돌아 저만치 멀리 있다. 나도 일곱 살인가? 하며 혼자 웃다가 그러면 앞니 빠진 천진은 낭만은 어디 있지? 하며 거울 보는 저녁 밤.


만 75세 이상을 시작으로 65세, 이번 주는 만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무료 독감주사 예정인데 문장도 어렵고 글씨는 더  작은 예진표를 옆에서 읽어 드리며 이젠 달달 외우고 있는 나도 안경을 다시 맞춰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름 석 자랑 서명은 자필로 삐뚤빼뚤하지만 손에 힘주고 쓰시는 어르신 옆에 돋보기가 있었다. 40대용 돋보기도 있다는 것에 나만 볼 빨개졌지만 껴보니 글씨가 진하게 보이는 것이, 아, 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었지만 나의 마음은 침침했다. 지난여름 안경점에 갔을 땐 별일 없어 원데이 렌즈만 한 통 사 왔는데 한 계절 건넜다고 눈이 말썽이다. 자료 입력과 종이에 받아 쓸 글씨들이 밤 천장에 떠다닌다. 빙글빙글 내일은 또 얼마나 눈을 찡그려야 하나라도 더 정확하게 볼까 하고.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는 남과 님처럼 시력이 왔다 갔다 한다. '아직 이르다'라고 웃는 옆 사람은 남 같고 '어머, 저도 요즘 그래요'라며 숫자 3을 8로 살짝 고쳐주는 사람은 님 같은 가을.


단풍처럼 후다닥 왔다가 퍼뜩 가버린 사람처럼 노안도 그럴 수 있다면 저, 단계별 연령별 돋보기를 슬쩍 저만치  밀어 놓아두고 싶지만 무릎처럼 관절염처럼 치아처럼 흘러간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두 눈.


무얼 보며 살았는가요? 살고 있나요?


아이들 셋은 벌써 도시에 공부하러 나갔고 24년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은 퇴직이라는 나이가 보이고 봉구스 밥버거에서 데려 온 미풍(강아지 이름)이는 5년째 동거 중이고.


하동, 금오산 아래 진교에 살아요 저는. 산 정상에 오르면 전남 여수, 광양이 오른쪽에,  이순신 대교가 저 쪽에. 남해대교 노량대교가 코 아래에 보이고요. 경남 사천 삼천포까지 훤히 보이는 산, 금오산 아래 진교에 살고 있어요.


눈이 아예 안 보일 뿐 아니라 시각적 상상력과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으며 '본다'는 관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무엇 하나 표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본다'라든지 '빛'과 같은 개념을 질문하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결국 모든 점에서 시각이라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본다'는 것과 관계있었던 모든 부분을 상실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의 책에서)


뇌의 특정 부분에 이상이 생겨 시각에  많은 장애가 왔다. 나도 동안신경을 누르고 있는 작은 혹이 생겨 복시가 왔다. '보기'도 어렵고 '본다'는 상황 자체가 인지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지를 뇌에게 물어야 하나, 눈에게 물어야 하나. 지난 시간 무수히 보았던 가족들은 일기는 책은 모든 만난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초록을 보면 눈이 좋아진다는 동네 이야기가 돌아다녀 초록색 계통 옷을 자주 입는다. 눈이 '기억'하는 대로 하루가 지나고 눈이 '본'대로 무지개 같은 그림을 그려놓고 눈이 '말하는'대로 맑거나 흐린 날을 보내면서 눈아 눈아 제발 건강하기를.



버스를 타면 소풍가는, 여행가는 기분이 들어 신나요. 가까운 거리는 버스로, 먼 거리는 운전해서 다니고 있어요.


퇴근길. 하동읍에서 완행버스 타면 30분 걸리고요,

완행버스 타면 재밌어요. 다양한 삶을 제가 다 살아보는 마냥 버스 승객이 되어 마음은 땅끝까지 하늘까지 돌아다녀요.  하동읍내를 돌아 학생도 싣고 퇴근하는 아주머니도 타고 거꾸로 오후에 출근하는 근로자들도 보면서 버스를 타요. 마스크 속에 감춰진 표정이라 해도 선하고 성실한 마음은 발걸음으로 나타나요. 새 신발 신은 아이처럼 씩씩하게, 버스도 달려요.


오늘 본 기분으로 하트 보내드려요~♡

좋은 밤 보내세요


바다가 가까워 자주 집 밖을 나가요. 그림자로 하트 만들기를 좋아해요. 가을 볕이 그림자를 선명하게 그려 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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