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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2. <나의 눈부신 친구들>의 도시

이탈리아 36일 여행기

by 하도

22.09.07

아침 - Augustus Napoli

점심 - Stratia

저녁 - Pizzeria Da Attilio


숙소 - AirBnB (https://www.airbnb.co.kr/rooms/37004237)


아침이 되니 어젯밤에는 그렇게 무서웠던 거리가 출근하는 사람들과 일찍부터 구경하고 싶은 부지런한 여행객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숙소 바로 밑에는 생선 가게, 그 옆에는 피자 가게가 있었는데 나폴리에서 유명한 피자 집 중 하나로 저녁이 되니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맞은편에는 치즈와 소시지를 파는 작은 가게와 축구 유니폼 가게가 있었다. 건물 위쪽으로는 창문마다 작은 발코니들이 있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 식물과 의자, 뺄래줄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발코니마다 느낌이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침으로는 카푸치노와 크로와상을 주로 먹는다고 한다. 첫 아침 식사는 현지인처럼 하고 싶어 숙소 근처에 있던 Augustus 바에서 카푸치노와 크로와상 대신 나폴리에서 유명한 빵인 바바와 스포리아텔라를 주문했다. 스포리아텔라는 리코타 치즈가 들어있는 바삭한 빵인데 특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럼과 설탕에 절인 바바는 예상보다 술맛이 진하게 나서 아침부터 먹기에 부담스러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야채, 과일, 유제품처럼 신선한 음식을 잘 챙겨 먹지 못해 가능하면 아침은 슈퍼에서 산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 마트를 가기 전까지는 내가 이탈리아에 왔다는 게 꿈만 같이 아득하게 느껴졌는데 거의 백 가지가 넘는 파스타 종류를 보고 드디어 실감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크고 동그란 면을 골랐는데 이 면은 익히는 데만 거의 30분이 걸려 요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계속 가지고 다니다가 2주가 지나서야 부엌에 잘 갖추어져 있는 팔레르모 숙소에서 먹을 수 있었다.


나폴리의 올드 타운에는 성당들이 모여 있는데 성당을 이어주는 길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상점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폴리는 동남아시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리는 지저분하고, 길거리에 담배 피우는 사람들, 그리고 매연까지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다 경적 소리까지 더해지니 스리랑카가 생각날 정도였다.


'A language of secrets'_ how My Brilliant Friend revolutionised female friendship on TV.jpeg

나폴리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레네 페란테의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 때문이었다. 나폴리 근처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레나와 릴라의 삶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로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 소설 때문에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이탈리아가 되었나 싶다. 두 명의 주인공 중 레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나폴리라는 대도시를 경험하게 되는데 나도 마치 레나가 된 것처럼 드라마에 나온 곳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점심으로는 나폴리에 왔다면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먹는 피자를 먹기로 했다. 현지인도 기다려서 먹는 곳이라기에 여러 피자 집 중 Stratia를 선택했다. 내가 갈 때는 평일 점심 시간이어서인지 바로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르게리따가 나폴리를 대표하는 피자라기에 시도해 봤는데 재료가 신선해서인지 피자 위에 토핑이 많지 않아도 맛있었고 무엇보다 도우가 쫄깃했다. 이후에 다른 지역에서도 피자를 먹어 보면서 이날 먹은 피자가 그리워했지만 당시에는 큰 감동까지는 받지 못했다.


나폴리는 로마 황제들의 휴양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성들이 있었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멋지지 않다던 나폴리 항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계속 건물들만 보이다 바다와 배수비오 산이 보였을 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Castel Sant`Elmo는 나폴리 올드 타운 옆 언덕 위에 있는 성이다. 나는 내 체력을 너무나 믿은 나머지 푸니쿨라를 타지 않는 선택을 했는데 길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힘들게 도착한 성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고,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이 술을 가져와 파티 아닌 파티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지는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행히 올라오는 길 중간에 괜찮은 뷰 포인트가 있어서 다시 내려가 그곳에서 한참을 있었다. 때론 잘 못 된 선택 처럼 보이는 것에서 괜찮은 부분을 찾기도 한다. 여행 중에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어서일까.


저녁으로는 숙소 옆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피자 가게 Pizzeria Da Attilio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포장했다. 별 모양의 피자로 유명한 곳인데 피자 끝부분에 치즈가 들어있어서 특이했다. Stratia와 비교했을 때는 덜 짜지만 도우는 더 쫄깃했다. 그런데 아침으로 빵, 점심으로 빵 (피자), 저녁으로 빵 (피자)를 먹으니 밀가루를 과다 섭취해 벌써부터 몸이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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