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6일 여행기
22.09.09
Fiordo de Fuore
Path of gods
저녁 - Ristorante C'Era Una Volta
숙소 - Villa Verde (http://www.pensionevillaverde.it)
포지타노에서는 봐야 되거나 해야 하는 건 특별하게 없다. 포지타노에서 가장 맛있는 그라니타를 판다는 곳에서 멋쟁이 할아버지에게 하나를 건네받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뿐.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기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그것도 path of gods라는 이름의 길을. 신의 이름을 빌린 길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울지 궁금했다.
Path of gods는 보메라노(Bomerano) 마을에서 시작해 포지타노에서 끝나는 3시간 정도의 산길이다. 포지타노에서 시작해도 되긴 하는데 처음에 계단을 많이 올라야 하고 (계단이 1,500개라는 소문이 있다) 오르막길이 많아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보메라노 마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포지타노에서 보메라노 마을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쏘렌토(Sorrento)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나는 굳이 쏘렌토에 들리기보다는 보메라노 밑에 있는 피오르도 디 푸로레(Fiordo de Fuore) 해변을 구경하고 보메라노 마을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보통 이동하기 전에 네이버 블로그 글을 많이 찾아보는 데 내가 선택한 루트로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긴 했는데 구글 지도가 길이 있다고 했고, 1시간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기에 출발했다.
푸로레의 첫인상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감탄하는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착한 시간이 보통 해수욕을 시작하지 않는 아침이기도 했고, 날씨도 좋지 않아 그랬던 거 같아. 괜히 내가 이곳의 아름다움을 못 찾고 있는지 아쉬워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햇빛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마침 새파란 하늘과 대조되는 노란 봉고차가 지나가는 데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 포지타노에서 피오르도 디 푸로레에 간다면 쏘렌토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이기 때문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 기사님이 "Fuore?"라고 여쭤보신다. 그때 "Si!"라고 답하면 된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버스를 탈 때 푸로레에 간다고 말해놓는 게 좋다. 왜냐하면 정류장이 그냥 도로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보메라노 마을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문제는 그 길이 거의 다 계단이었다. 아마 하루에 이렇게 많은 계단을 오른적이 없었을 거다. 끝없이 계단이 있었다. 왜 사람들이 굳이 쏘렌토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는지 몸소 깨달아버렸다.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트래킹 시작과 동시에 구름이 풍경을 막아버렸다. 걸으며 스리랑카 포튼 플레인 국립공원에 세상의 끝이라는 곳이 생각났다. 트래킹 길 끝에 있는 절벽인데 주변의 풍경을 위에서 볼 수 있어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에는 절벽 바로 앞까지 구름과 안개가 짙어 주변의 풍경은 전혀 볼 수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정말 세상의 끝 같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없을 거 같은 끝. Path of gods 트래킹 길도 그랬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나는 그 끝을 옆에 두고 계속 걸었다는 거다. 그러다 가끔 바람이 구름을 옮겨 주었는데 그 찰나의 풍경이 기가 막혔다.
!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절벽 위에 있고 길이 좁기 때문에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면 힘들 수도 있을 거 같다. 나는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겁이 많아 밑의 풍경을 보면서 걷기는 어려웠다.
트래킹으로 흘린 땀은 포지타노 해변에서 식히기로 했다. 포지타노 해변에는 사람도 많고 바로 근처에서 배가 자주 오고 가기 때문에 물이 깨끗하지는 않다. 하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포지타노 풍경이 또 아름답다기에 놓칠 수 없었다. 파도가 세서 바다에 들어가기가 힘들었지만 그곳에서 본 풍경으로 지금까지의 힘듦을 모두 잊을 수 있게 만들었다. 정말 이 마을은 어떤 각도에서 봐도 아름답다.
이탈리아에 간다면 매일 와인을 (최소한 맥주라도) 한 병씩 마시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지금까지 마신 술이라곤 맥주 반 병이 끝이었다. 오늘만큼은 꼭 와인을 마시고 싶어 숙소 주인분이 추천해 주신 Ristorante C'Era Una Volta에 가서 로컬 와인을 시켰다. 이름도 없는 이 화이트 와인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마신 와인 중에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홀짝홀짝 마시니 기분이 좋아져 슈퍼에 들러 스파클링 와인을 한 병 사서 들어갔다.
! 포지타노는 작은 도시이지만 여행객은 많기 때문에 괜찮은 곳에서 밥을 먹고 싶다면 꼭 예약을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