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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Jul 21. 2024

네팔에서 만난 사람들

네팔 여행

여행을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미 그 여행지를, 네팔을 선택했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일까. 이 글은 그들을 기억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생각이 있다는 걸 기록하기 위함이다.


ABC 트래킹   

뉴욕에서 온 C

트래킹 이틀차에 셔츠를 풀어 헤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올라가고 계셨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본인이 70살인데 어제 자기보다 더 나이가 많지만 건강한 한국 사람을 봤다며, 한국 사람들은 체력이 좋은 거 같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와는 MBC에서 ABC에서 가는 길에 또 만났다. 나는 올라가는 중이었고, 할아버지는 하산하고 계셨다. 한 걸음도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는데 그 걸음이 모아져 나보다 더 빨리, 많이 걸으셨던 거다.   


ABC에서 밤부 가는 길에 만난 T

하산 길에 같이 걷게 되어 잠깐 이야기를 했다. 네팔에서 IELTS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잠시 헤어졌다가 데우랄리, 밤부에서 또 만났다. 본인은 시누아까지 간다고 해서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We might see one day. The world is a small place."   


한국에서 온 A

네팔에서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낚시를 하던 사람이 악어에게 물려 죽어도, 정부가 도로를 넓힌다는 이유로 나의 터전을 없애도 그러려니 한다. A는 그래서 네팔에는 신이 많고, 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 같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는 믿을 거라고는 신밖에는 없는 거다.


포카라   

인도에서 온 I와 한국에서 온 E

어떻게 대화를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일행과 내가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E가 말을 걸었던 거 같다.


I는 인도에서 금융 회사에서 일하다가 모든걸 내려놓고 포카라로 와서 요가와 명상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고, E는 한국에서 세일즈 일을 하다 직므은 싱잉볼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둘은 I의 스튜디오에서 E가 수업을 듣게 되면서 만났다고. 지금까지 하던 걸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 설레면서 불안하고, 여유로우면서 조급한 에너지가.   


프랑스에서 온 H

H는 네팔로 여행을 왔다가 네팔 남자와 사랑에 빠져 포카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걸 하고 있다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나가르코트   

독일에서 온 A

뷰가 좋다는 평을 보고 간 음식점에서 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짜이를 마시고 있었는데 우리밖에 없던 식당에 누군가 들어왔다. 괜스레 한 마디 하고 싶어 ”테라스에 뷰가 좋아.“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16년째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안드리아는 독일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런던에서 금융 관련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이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지금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케팅과 부동산 일을 하고 있었다. 나가르코트는 이번이 3번째 방문이고 2달 정도 머물 예정이라고.


오후에 길에서 또 만났는데 식당에서 3시간 정도 일을 하다 잠시 쉬고 싶어 산책을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는 나가르코트에서 3시에 박타푸르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그게 “interesting” 하다며 그 버스를 타고 싶다고 했다. 왜 그게 흥미로운 건지는 이해하지 못한 체 헤어졌다.   


나가르코트에서 살고 있는 D

할 일이 없어 어슬렁 걷다가 만났다.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컨테이너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었다. 예전에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도로를 넓힌다는 명목으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집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부당하다는 건 알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 그냥 임시로 만든 곳에서 지금은 살고 있다고. 그래도 네팔 장신구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사업과, 강아지 브리더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박타푸르   

나가르코트에서 박타푸르까지 가는 버스에서 만난 D

전 날 봤을 때 나가르코트에서 박타푸르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괜찮아 보여 시도해 보기로 했다. 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에 있는 D에게 “여기서 나가르코트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물어봤고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몇 분 후에 버스가 왔는데 아뿔싸, 어제는 휴일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거다. 버스는 만차였다. 도저히 큰 가방을 메고 탈 수 없을 거 같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D가 탈 수 있다며 용기를 줘서 일단은 탔다. 하지만 10분 만에 후회를 했다. 왜냐면 이후에 아무도 내리지 않고 계속 타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금을 받는 사람이 버스 창문에 매달려가며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20분은 서울의 지옥철과 비슷할 정도로 힘들었다. 중간에 내려야하나 몇 번이나 고민했다. 아마 D가 없었다면 진작에 내렸을 거다.


D는 지금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동생 둘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 남동생은 농촌에서 농사를 하고 있고 여동생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궁금한 게 많았는데 자꾸 한국과 네팔을 비교하며 네팔은 경제가 안 좋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싱가포르에서 온 B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B가 들어오더니 더르바르 광장이 어디 있는지 음식점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대신 답을 해주니 덥다며 식당에서 음료를 하나 마시고 간다고 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가르코트에 가는 방법을 아냐고 하셔서 버스를 탈 수 있지만 택시를 추천한다고 했다. 그런데 B는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에 들어가는 경험을 더 좋아한다며 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네팔 여행을 오는 사람들은 비슷하나 보다. 나가르코트가 어땠는지를 설명하며 “요즘 날씨가 안 좋아서 나가르코트에 가서도 설산은 못 볼 거예요.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던데 저는 운이 없었어요.”라고 하니 “아니야, 다른 부분에서는 행운이 따를거야.”라고 하셨다.


밥을 다 먹고 내가 호텔 체크인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자 “운이 없다고 했지만 이게 오늘 너의 행운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며 밥을 사주셨다.


이후에 길에서 또 우연히 만나 주주더히를 같이 먹었는데 “너는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 같아. 돈을 좇는 게 아니라 돈이 너를 쫓아오는 삶을 살 거야”라고 해주셨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영화 <The Alphanist>는 솔로 프리스타일 알파니스트 Marc-André Leclerc의 삶과 도전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Marc-André Leclerc는 돈, 명예, 명성 그 어느 것에도 딱히 관심이 없이 그저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또 한 번의 도전을 성공한 후 영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The actual achievement doesn’t really change your life, like you think it might, but what you’re left with is the journey that got you to that point.”


여정(Journy),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말했던 단어이다. 평소의 대화에서는 듣기 힘든 단어를 유난히 이번 여행에서 계속 들었다.


삶이라는 journey를 살아가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가지게 된 가장 큰 질문이다.


여행을 다녀와 친구 A를 만났다. 나에게 너의 미래 계획은 뭐냐고 물어봤다. 나는 없다고 했다. 아니 모른다고 했나. 생각해 보니 나는 방향을 결정을 해야 하는 그 순간마다 하고 싶은 거, 아니면 지금 꼭 해야만 하는 거를 선택하며 살아왔다. Journey를 먼저 고민했다기보다는 나의 결정들이 지금의 journey를 만든거다.


‘그래, 꼭 journey를 정해놓을 필요는 없어.’


네팔에서의 17일. 짧다고 말하기도 길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10년 전 지도 한 장을 들고 도시를 탐험하며 울고 웃고 행복하고 외로웠던 20대의 내가 종종 생각났고, 내가 10년 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팔, 나마스테. See you a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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