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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Aug 02. 2024

모든 시작에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그렇다,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던 나는 아예 외국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결정하다 보니 어느 날 내 손에 비자가 있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추첨이다. 추첨이라는 건 신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비자를 받는 건 아니며 언제 비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당첨이 되면 가고 아니면 안 가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비자를 신청한 날은 유난히 마음이 힘들었다. 퇴근하고 저녁에 친구와 밥을 먹는데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하도야, 내가 너처럼 결혼하지 않고 젊다면 해외에서 한 번 살아볼 거 같아. 워킹홀리데이 같은 거 있잖아. 그거 아무나 못 가는거다.”


외국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기는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도전을 해보지 않은 이유는 대학생 때는 ‘대학원을 외국으로 가야지’하는 생각에, 대학원을 다닐 때는 ‘직장 생활을 외국에서 해봐야지’하는 생각에, 사회 초년생 때는 ‘조금만 경력을 쌓고 외국에 가봐야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에는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았다. 마침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는 나이 제한이 만 30살이었는데 (지금은 만 35세로 바뀌었다.) 당시 내 나이가 만 30살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도 없다는 초초함 때문이었을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을 했다.


이후에는 바쁜 일상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캐나다 이민국에서 메일을 하나 받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인비테이션이었다. 누군가는 몇 달을 기다려도 안 나온다는 비자가 나는 신청한지 1-2달 만에 나왔다.


얼떨떨한 기분에 일단 수락을 했는데, 20일 이내 신체검사를 완료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딱 4곳의 병원에서 비자용 신체검사를 할 수 있는데 모든 곳에서 예약이 다 차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은 신체검사 예약하기가 쉽지 않아 먼저 예약을 하고 그 날짜에 맞춰 인비테이션을 수락한다고 한다. 망한 수강신청도 정정기간에 해결을  봤던 그 실력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취소된 예약이 있는지 확인했고, 운이 좋게 기간 내 원하는 병원에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바이오 매트릭스 등록까지 하고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받았지만 바로 떠날 생각은 없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안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거 같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나를 설명하는 모든 것들이 없는 상태가 되기 두려웠다. 다행히도 비자가 나오고 1년 이내에 출국하면 되었기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비자를 신청하기 전에 했어야 하는 고민들을 그때부터 치열하게 했다.


나는 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하는 거지?
한창 일하는 시기에 잠시 떠나도 괜찮을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건 뭐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걸까?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래서 답을 찾았냐고?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영부영 일상을 이어나가기 싫었다. 이제껏 애써 외면해왔던 찐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릴 때가 되었다는걸, 이제는 외면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모르는 곳, 나도 모르는 곳에서 살아보기로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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