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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Sep 15. 2024

워홀 첫 일주일, 별것도 아닌 일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밴쿠버 첫날의 하늘은 파랬다. 파란색 단어 그대로 정말 파아아랬다. 한국에서 뿌연 하늘만 보다 왔다 보니 하늘만 봐도 행복했다.


밴쿠버 첫 날


들뜬 마음에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에게 날씨가 좋다고 먼저 말을 건넸다. 기사님은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일부터는 계속 비가 올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좋은 날씨가 내일 갑자기 나빠질 수는 없어 보였다. 그만큼 날씨가 좋은 날에는 흐린 날이 어떤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안타깝게도 일기예보는 정확했고 이후로 한동안 매일 비가 왔다.


밴쿠버는 한국보다 날씨가 따뜻하다고 알고 왔는데 3월의 밴쿠버는 아니었다. 해가 있으면 따뜻하기는 하지만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밴쿠버는 레인쿠버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1년에 비 오는 날이 많다. 그래도 봄부터는 점차 날씨가 좋아질 줄 알아 일부러 3월에 왔건만. 겨울옷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아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추위에 떨었다. 옷을 살 수도 있었지만 곧 따뜻해질 거 같은 기대감에 버텨보기로 했다.


첫 일주일은 힘들었다. 모든 게 내 예상과 달랐다. 날씨는 더 추웠고, 집을 구하는 건 더 어려웠고, 음식은 더 맛없었고, 더 외로웠다. 이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외로움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혼자서 못하는 게 없었다. 혼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 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주위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거와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있는 건 달랐다.


당시 나는 누가 조금만 건드리면 울 거 같은 우울감과 불안감에 가득 차 있었다.


밴쿠버에 도착한지 3일차 즈음이었던 거 같다. 그날도 날씨는 좋지 않았고 뷰잉을 갔다 온 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통신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와있었다. 데이터를 초과해서 1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선택한 통신사는 Phonebox였는데, 데이터를 다 쓰면 인터넷이 끊기는 게 아니라 비용이 추가로 청구되는 단점이 있었다. 3일 만에 5G를 다 사용했다는 게 믿기지는 않았지만 통신사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해도 동일한 내용이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냥 울어버렸다.


다행히 한국에 있는 친구가 새로운 유심을 구입해 줘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화가 나는 건 다음 날 아침에 애플리케이션을 다시 확인해 보니 인터넷 사용량이 5G를 넘지 않았다고 되어있었다. 통신사에 문의하니 집계에 오류가 있어 문자가 잘 못 온 거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에 감정을 소모했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래도 한 번 바닥을 찍고 나니 두려울 게 없어졌다. 최선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마음 가짐을 ‘아니면 말고’와 ‘어쩌라고’로 바꿨다.


아님 말고 ㅎㅎ


원래 같으면 조건에 맞지 않아 연락해 보지 않을 집에 ‘아니면 말고’ 마음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같은 숙소에 있던 사람들에게 ‘아니면 말고’ 마음으로 말을 먼저 건네고, 맛없을 거 같지만 먹어보고 싶은 과자를 ‘아니면 말고’ 마음으로 먹어봤다. 의외로 많은 것들이 괜찮았고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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