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밴쿠버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구하는 거였다. 나는 대부분의 워홀러와는 상황이 달랐는데, 강아지와 같이 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쉐어하우스보다는 집 전체 렌트를 하고 싶었고, 집이 주는 안정감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월세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 했다.
캐나다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집 전체를 렌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들 했다. 어떤 사람은 불가능할 거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회사가 관리하는 건물이라면 처음에 6개월치 이상의 월세를 납부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집을 구한 사람들의 후기를 몇 개 찾아보고 나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원래는 매트로타운 역 근처에서 집을 구하려고 했다. 다운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사람들이 적고, 근처에 큰 쇼핑몰과 공원이 있어 살기에 좋을 거 같았다.
매트로타운 역 근처에 있는 아파트 중 내 조건(회사가 관리하고, 강아지와 같이 살 수 있고, 6개월 계약이 가능하고, $2,500 이하)에 맞는 곳은 두 곳이 있었다. Arbor Place와 Panarama Tower.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고 방문하니 직원이 건물을 소개해 주었다. 두 곳 모두 괜찮았는데 왠지 끌리지 않았다.
건물 자체보다는 매트로타운 역 근처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상 집을 찾아보니 다운타운보다 월세가 저렴하지도, 쇼핑몰이 좋지도 않았다. 어디서든 갈 수 있는 프랜차이점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담긴 작은 가게를 좋아하는데 쇼핑몰에는 아무래도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센트럴 공원이 좋긴 했지만 다운타운의 해안가 산책로와 스탠리공원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모임이나 행사는 다운타운에서 열리는데 강아지를 집에 놔두고 다운타운에 자주 가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다운타운 근처로 다시 집을 찾아봤다. 시간이 이미 지체되었기에 원하는 조건을 다 만족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면 일단 메시지를 보냈다. 네이버/다음 카페, Kijiji, Rentfaster, Craglist, Facebook marketplace는 물론 일본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웹사이트도 확인했다. 30곳은 넘게 연락을 했던 거 같다. 사기꾼들에게도 종종 답장을 받았는데 주로 Craglist에 모여있었다.
다운타운에서는 3곳을 찾았다. Bayview at Coal Harbour와 Facebook marketplace에 개인이 올린 곳 2개였다. Bayview at Coal Harbour는 1 bedroom이 예산을 초과해 방이 없는 studio를 보았다. 전체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크기가 너무 작았다. 역삼역 근처에서 집을 구하려고 했을 때 보았던 집 크기와 비슷했다. 캐나다에서도 이렇게 작은방을 볼 줄 몰랐다.
다음으로는 Nelson square 근처에 있는 집 뷰잉을 갔다. 거리가 안전해 보이지 않고, 건물이 너무 낡아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그나마 괜찮았던 건 위치와 1달 전에만 말하면 언제든지 이사를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Yaletown에 있는 집 뷰잉을 갔다. 가격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일단 7년 전에 스페인에서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던 집 주인이 친절했고, 건물 컨디션도 지금까지 봤던 모든 곳 중에 깔끔했다. 집 주인이 일 년에 6개월은 밴쿠버에서 나머지 6개월은 다른 지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딱 6개월동안 살 사람을 찾고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에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고민할 게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집에 가서 계약서를 쓰는 데 집 주인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며 한국 사람에게 빌려주는 게 본인도 좋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한국 드라마를 만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밴쿠버에 도착하고 계약을 하기까지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는 조건이 까다로워 오래 걸렸던 거고 보통은 그전에 모두 집을 찾았다고 한다.
계약을 하고 돌아가는데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집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과 마음고생을 했지만 어찌 되었던 나와 맞는 집을 찾았으니까. 결말을 알았다면 집을 구하기 전까지 마음을 편히 먹었으면 좋았을걸. 걱정한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걱정을 한다.
이제는 일상을 꾸려나갈 공간을 찾았으니 본격적으로 워킹홀리데이 시작이다. 걱정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