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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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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스케치북 Mar 30. 2019


빨간색을 닮은 그녀

                                                                            

그녀와 친하지 않았다. 

아니,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첫 모임에서 그녀는 빨간색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왔다. 술을 좋아하지만 그날은 남편의 기사가 되기 위해 참는다고 했다. 벌써 8년쯤 전이다. 6팀의 부부 12명이 멤버였다. 남편의 동창 모임이다. 남자들은 이미 친구고 여자들은 친구가 되어가는 거였다.
하지만 왠지 친구가 잘 안 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직업은 건물 관리인이라고 말하는 건물주, 여주 땅 부자. 강남 황태자, 그런 수식어가 붙는 사람들이다. 그들 재산의 공통점은 묘하게도 대부분 유산상속이다. 친해지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금수저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을 거 같다. 여자들의 대화는 돈에 관한 것이 많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 이야기만 하는구나 생각했다. 

여자들의 호칭은 서울에 사는 강남 댁, 수원에 사는 수원 댁 등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부천 댁이었다.
그녀는 여주 댁이다. 여주로 시집 간 그녀는 30년 동안 여주 댁으로 살고 있다. 언제나 수다스럽고 활발했다. 

그녀의 남편은 소 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여주에 들어가서 살았다. 40대에 최연소 이장을 했다고 자랑하는 시골 사람이다.
     
나는 여주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다. 2-3년 전에 여주 이장님 부친상에 갔던 그곳이다. 이미 세 부부가 와 있다. 감기로 부스스한 나는 3시간의 주행에 어지러웠다. 영정사진 속의 그녀는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얹고 있다. 

왠지 스포츠카가 연상됐다. 영좌 앞에서 두 번 절하고 상주인 그녀의 남편과 아들과 맞절을 했다. 말은 건네지 못하고 다른 부부가 있는 자리에 합석했다. 국화꽃 한 송이 올려놓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오랜만에 모든 멤버가 모였다. 3년도 넘은 거 같다. 그럼에도 모두 어제 만난 듯 익숙하다. 당연하지만 조용히 여주 댁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술은 안 먹고 안주만 집어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우울증 약을 먹은 지는 1년 반쯤 된 거 같다고 한다. 1년 전에 우연히 그녀를 만났던 수원 댁이 그때를 회상했다. 
“그때도 기운이 별로 없어 보였어요. 남편한테 방 하나만 얻어주면 도시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대요. 그때도 우울증 약 먹을 때였나 봐요.” 그랬구나.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귀촌이 로망이지만 20대초반에 시골에 시집 간, 에너지 많은 여주 댁은 오히려 남은 생을 도시에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자식들 시집 장가는 보내고 가야지. 애들이 무슨 죄야."  "그러게~ 친정아버지 산소 근처에 가서 죽었대” 독해서 자기 목숨을 끊는다고도 하고 오죽하면 죽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울증이 기분이 다운되는 건줄 안다. 우울증은 기분이 아니라 병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절실한 무언가가 있어야 삶의 의지를 찾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친구들에게 약속이 있다고 하고 우리 부부는 먼저 나왔다. 내 얼굴에서 피로를 눈치챈 거 같다.
   
멀리 겨울나무가지에 연두색이 감돈다. 봄이 오고 있는데 문득 그녀 생각이 난다. 그녀의 남편이 방을 얻어줬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그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은 이 생의 줄을 잡아보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
가끔 삶이 잿빛일때면 빨간색을 닮은 그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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