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야구장에 다녀왔다.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특별히 좋아하는 팀도 없고 룰도 잘 모르는 그야말로 ‘야알못’에 가깝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운동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하는 것은 신나는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 나와 함께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해 준다면 언제나 마다하지 않고 기쁘게 따라나서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따지자면 야구라기보다는 ‘야구장’ 팬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야구장에서 어떤 팀을 응원하느냐는 그 날 함께 가는 사람이 어느 팀의 팬인지에 절대적으로 달려있다. 장점이라 한다면 다양한 팀을 응원해 볼 수 있고, 그때마다 상당히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번에 같이 간 동행은 오랜 롯데 팬답게 응원도 상당히 의욕적인 사람이라서 장단을 좀 맞출까 싶어 응원도구도 샀다. 한 회 빼고 무득점으로 지는 바람에 견제고 뭐고 안타까워만 하다가 끝나긴 했지만. 야알못인 야구장 팬으로서는 롯데의 그 의욕 넘치다 못해 칼부림 날 것만 같은 응원전의 열기를 가장 좋아한다. 이번에는 부산 사투리를 진하게 쓰시는 골수팬 앞에 앉아서 2회부터 8회 말까지 크레셴도 되어가는 그의 고함소리로 경기를 많이 읽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에—이ㅆ, 내가봐-도, 세잎이다!” 라든가, “파울이야 파울, 저거는 딱 보면 파울이자나!!” 같은 식의 해설은 도움도 되고, 재미도 있어서 내내 빵빵 터지며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후반으로 갈 때쯤 머리에 비닐봉지 쓰고 응원하는 것은 롯데 응원전의 백미라서 꼭 셀카를 찍는다. 물론 너무 롯데 팬처럼 보일까 봐 어디에 보여주진 않는다. 봉지 색이 오렌지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길래 내가 롯데 응원을 진짜 오랜만에 왔구나 싶었다.
가장 많이 응원해 본 것은 엘지 경기이다. 삼십 년 지기인 남사친 한 명은 어린이 야구단 출신의 순도 높은 엘지 트윈스 팬인데, 나를 가장 많이 야구장에 데려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에 가면 저 혼자 앉아서 집중력을 발휘할 뿐, 멍청히 앉은 나에게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고 잘 보고 있는지 말 한마디 거는 법이 없다. 응원도 팔짱 끼고 앉아서 입으로 노래만 열심히 부르고, 경기의 득실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기복도 크지 않은 양반 중의 양반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정심이 엘지의 팬으로 살며 갖춰진 것인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엘지의 팬인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된다. 엘지가 한국시리즈 나가는 날 풀릴지도 모르는 문제다.
대학교 졸업 즈음에는 두산 그룹이 다니던 학교를 사들였다고 해서 단체로 야구장에도 가게 해 주고 억지 애교심을 고취시키는 혜택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두산 경기를 처음 본 것은 그때가 아니라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랑 비슷하게 야구가 아니라 야구장 팬인 남자 친구와 함께였다. 그는 두산의 팬임을 자처하긴 했지만 그저 야구장 가는 게 영화 보는 것 정도의 재미있는 시간 보내기인 사람이었고, 자주 가는 영화관이 있듯이 접근성 차원에서 잠실구장이 홈인 두산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왜 엘지가 아니고 두산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엘지 팬이 되기엔 너무나 인내와 끈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여하튼 이 사람과 야구장에 가면서 아기자기한 응원도구들도 하나둘씩 사 보고, 갖고 싶은 것도 눈에 들어오면서 두산이 그런 돈 되는 마케팅 요소를 얼마나 훌륭하게 갖추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지역 탓인지는 몰라도 내 주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산팬이고, 그들은 확실히 유니폼, 머리띠, 머플러나 응원봉 등의 굿즈를 사는 데 타 팀 팬들보다 과감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경험을 한 팀이 기아인데, 안타깝게도 그 날 나와 동행했던 기아 팬의 (어떤 관계였는지까진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 행동이 너무나 비호감이어서 그 날 경기가 어땠는지 큰 인상이나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장 팬에게는 단 한 번의 주관적 경험이 매우 중요한 거라서 죄 없는 기아 타이거즈는 그 비호감 팬과의 연상작용으로 인해 영원히 내가 관전할 수 없는 팀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사실 적지 않은 경험을 했다. 올해는 같이 가자는 사람만 있으면 가을야구란 것도 한 번 정도 보고 싶고, 내년 시즌엔 사직구장 직관을 포함해서 서울 바깥의 야구장도 가 보고 싶다. 내 비록 야구팬은 아니지만 야구장 팬이란 이름에 걸맞은 경험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시켜 나가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볼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야구장 팬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내년쯤 프로야구 구단을 순회하며 응원을 다니고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