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김치

by 담쟁이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실수로 받게 되었다.

“여보세요” 채 말하기도 전에 나를 잘 안다는 듯

“으응 혜빈아, 회사야?”라고 묻는 목소리.

전혀 누군지 감이 안 와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 계실 때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때때로 과일이나 선물을 우리 집 현관에 불쑥 밀어 넣고 가시곤 했던 어른이었다.

“응, 김장김치 좀 주려고. 김치 있어?”

순간 대답할 말을 잃었다. 나에 대한 팩트 중 두세 번째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김치 안 먹는다는 건데 당연히 모르실 테고, 늘 필요 이상의 측은한 측은한 눈으로 날 바라봐주시는 이 분이 이번에 나한테 뭔가 해주시려고 얼마나 생각하셨을지, 김장을 하시면서 내 몫을 얼마나 더 하신 걸지, 내 연락처를 얼마나 어렵게 수소문하셨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빠르게 돌아갔다.

“아... 죄송해요. 제가 김치를 안 먹어서요...”

그러면 밥은 뭐랑 먹냐며 재차 물으시길래 집에 원래 김치가 없고, 집에서 밥 먹을 일도 많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냥 모른 척 받을까도 했지만 너무 감사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특별한 마음을 냉장고에서 버틸 만큼 버티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게 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대답하는 마음이 너무 죄송해서 빨리 전화통화가 끝났으면 했다.

“그래~ 안 먹는구나. 날씨 추운데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해. 미안해~”

“아니,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생각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데 당황하는 사이 전화가 끊겼다. 뭔가 빠르게 치고 빠진 느낌.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았다. 김치를 안 먹는 내가 너무 싫어서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는 왜 내가 김치를 안 먹는데도 뭐라 한 번도 안 해가지고. 짜증 난다. 엄마한테 따지고 싶다. 오늘 한 번 만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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