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만료일에서 눈길이 멈췄다.
참 기이한 일이었다. 잘 준비를 하려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책상 서랍을 열어보고, 벌써 몇 년 간이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엄마의 여권을 집어 든 것은. 발급 유효기간 10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이 종잇조각이 가진 가치는 이제 '엄마의 오십 대 중반 모습을 볼 수 있는 증명사진이 새겨져 있다'는 것만이 유일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기간 만료일에서 눈길이 멈췄다.
2020년 5월 26일.
여권에도 자아가 있어서 자신의 법적 수명이 끝나기 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만료일 이틀 전 평화로운 주말 밤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이 여권을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엄마가 떠난 지 4년 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나는 동안 모든 법적 서류에서 엄마의 존재는 차갑게 지워졌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임이 이름 위에 표시되든 아예 그 이름 석 자조차 사라지든 공문서는 매정하게 우리 엄마를 밀어냈고 그 문자들의 표현은 너무 딱딱했다.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는 것은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서류들은 되도록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고 미리 예상했던 건지, 나는 엄마의 사망 신고를 하기 직전 정신없던 중에도 주민센터에 가서 우리 가족의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미리 발급받아두었다. 그 서류들은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 거실 탁자 유리 밑에 깔려서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궁금증을 사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자세히 설명한 적은 없다.
이렇듯 공문서가 주는 건 온통 서운함 뿐인 가운데 아직 유효기간이 남은 여권이 서랍 속에 몰래 살아있었다는 사실-물론 여권 주인의 정보가 유효하지 않으니까 무용지물이지만-은 묘한 위로를 주었다. 그건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도 비슷했다. 우리 엄마가 들고 즐겁게 여행을 떠났던 여권, 우리 엄마를 어딘가로 데려다주었던 여권, 그리고 엄마의 고운 모습을 아직도 품고 있는 이 여권이 우리 엄마의 기억을 안고 지금까지 존재해 주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내겐 언제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특정한 날이나 물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동일한 연상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걸 느꼈던 요즈음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가 세상에서 잊혀진다'라는 자연스러운 사실에 못내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마저도 공감할 이가 없음을 깨닫고 있는 나를 불러내서 위로하는 것으로 이 여권은 그 마지막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권을 다시 한번 들어 내지를 한 장 한 장 뒤적여보았다. 엄마가 건강했을 때 다녔던 곳들과, 유독 좋아했던 여행의 기억들, 편찮으신 외삼촌을 만나러 엄마의 형제자매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 그리고 엄마가 탔던 마지막 비행기가 된 나와의 여행까지, 수명을 다하기 직전에 가장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작정이라도 한 듯 몇 개의 스탬프가 수 없이 많은 추억으로 되살아났다. 여권의 수명이라는 게 애초에 시작과 끝이 같은 날로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작될 때의 설렘과 아주 비슷한 감정으로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며 마무리하게 되는 여권 생애의 수미상관. 그래서 꽉 채운 열 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권의 완벽한 임무 완수를 축하하며 이 모든 뜬금없는 감상들을 가능하게 한 것에 대한 감사와 마지막 인사를 이 글로써 다시 한번 전하고자 한다. 여권의 생일이자 기일인 오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