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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27. 2021

혼밥을 잘하는 건 아는데

식탁 위 마주 앉은 나를 그리워하며 꾸역꾸역 밥을 집어넣었을 엄마의 마음

또 양 조절 실패다. 독거인의 주방일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것은 요리도 설거지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일 인분 만들기이다. 주중에 먹을 카레를 좀 만들어두려던 거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나는 한 냄비 가득 팔 인분의 카레를 젓고 있었다. 매일 한 끼 씩 먹는다 해도 한 주 분량이 넘어가니까 어쩔 수 없이 지퍼백에 소분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았다. 해동하면 맛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누가 그랬나. 나는 얼린 걸 녹여먹으면 확실히 맛이 없던데.


혼자 살면서 먹을 만큼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점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날마다 느낀다. 점심 저녁 두 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날이 많으니까 매일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불필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필요량 이상의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것은 더욱 부담이 된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저것은 내 입으로 들어갈 것인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결국 가게 될 것인지 어느 정도 가늠도 된다. 하지만 요리를 전혀 안 할 수도 없고, 하기만 하면 잠재 음식물 쓰레기를 대량으로 생산 해 내는 딜레마 속에서도 이 정도면 많이 발전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것은, 혼자 밥상 차려먹어 본 적 없는 요리 무식자로 시작해서 몇 년 만에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식재료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맛에 민감하지만 간을 심심하게 맞추는 사람이었다. 계량하거나 레시피를 똑같이 따라 하진 않지만 감으로 해도 꽤 맛을 내는, 나름 요리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혼자 이것저것 해보면서 처음 발견한 사실이다.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던 이십 대 까지는 내 손으로 온전한 밥상을 차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 냉장고에는 꺼내도 꺼내도 새로운 음식이 계속 나오는지. 냉동실에 마침 얼린 어묵이 있길래 국 끓여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날짜도 안 보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단 다시마랑 멸치랑 집어넣고 끓이면서 생각하다 보니 어묵 말고는 재료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래도 국물만 어째 저째 내면 되니까... 냉동실에 천연조미료인가 뭔가도 있어서 일단 조금 넣고 국간장도 어딘가에서 본 대로 한 큰 술 넣고, 정량이 뭔지 이러면 무슨 맛이 나는지 나는 몰라. 걍 있는 거 다 때려 박아. 그리고 엄마가 끓인 오뎅국(엄마가 해준 건 왠지 어묵국이 아니라 오뎅국인 것만 같다)에 늘 마늘 잔해가 있었던 게 기억나서 다진 마늘도 왕창 넣었다. 한번 부글 끓고 가위로 어묵을 요래 저래 자르고 보니 제법 모양은 난다. 맛을 보니 싱거운 내 입맛에는 딱이다. 하, 난생처음으로 어묵국을 끓여보았다. 무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내일 사서 넣어도 될까나. 엄마는 내가 혼자 요리할 줄 모른다고 맨날 화상 같이 여겼는데, 이제 와서 혼자 이러고 지지고 볶고 하는 걸 보면 다행으로 여길까, 미리 좀 하지 하고 원수같이 여길까, 엄마한테 국 끓이는 모습을 한 번 정도 보여줄 걸 그랬다. 그러고 보니 엄마 가고 나서 첨으로 이 재료 저 재료 넣어서 만든 요리 같은 걸 해냈다. 이젠 밥 좀 해 먹어야지.

2016년 7월 31일


엄마가 돌아가신  냉장고에 있는 각종 밑반찬부터 냉동실에 오래 저장된 음식까지 모든  아주 천천히 아껴서 먹었다. 평소엔 손도  댔던 식재료들도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만들었다. 물론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언니나 내가 사서 넣어둔 것이 많긴 했지만 엄마의 손길 조금이라도 닿은 음식들을 먹는  엄마를 보내주는 의식이라도 되는  아주 느리게 느리게  일을 계속해나갔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고 들었던 지인이 장례식장에서 이미 내게 예고한 적은 있었다. "엄마가 만든 반찬 마지막으로 비울 , 마음이 묘할 거야." 그땐 그냥 막연히 그렇겠구나 하고 들었는데 막상 그날이 오자 그제야 엄마가 떠나가는 듯하여 마음에는  구멍이 렸다.   먹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집에서 가만히 배터리 나간 장난감처럼 황망하게 앉아있던 그날의 내가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제대로 요리를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가 그다지 맛깔나게 음식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전수해 준 비법이 하나도 없었던 까닭도 있다. 일 년 내내 하루 세끼 사 먹지 않으려면 뭔가는 할 수 있어야 했지만 갖은양념과 손 많이 가는 밑 작업이 필요한 한식의 문턱은 높아서 처음 손댔던 것은 서양요리였다. 파스타가 라면 보다 아주 약간 더 귀찮은 난이도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자신감이 붙자 이것저것 레퍼토리도 많아졌고, 친구들 부르면 보기 좋게 한상 차릴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한동안 우리 집이든 남의 집이든 여럿이 우르르 모여서 뭔가 해 먹는 홈파티를 즐겼다. 나이 먹고 갑자기 든 홈파티 바람이었지만 꿍짝이 맞는 친구들도 있어 다행이었다. 시끌벅적하게 요리부터 같이하면서 먹고 얘기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가고, 불금에 모여 놀면 밤을 새우고 다음날까지 이어질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발견도 있었다. 이제 보니 나는 요리를 좋아할 뿐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해 주고 먹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내가 바깥에 돌아다니느라 집에서 손하나 까딱 안 하는 인간인 줄 알았지, 집에서도 계속 부산스럽게 뭔가 하는 사람인 줄 정말 몰랐지. 중요한 건 환경으로 인해 떠밀린 게 아니라, 이전까지는 있는 줄도 모르던 내 기질의 발현이었다는 사실이다. 높은 확률로 아빠 쪽에서 온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유전자에 내재된 게 분명한 이 기질을 엄마 있을 땐 왜 발휘하지 못했을까. 요리에 대해 칭찬받고 자기 효능감이 높아질 때마다 어김없이 엄마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도 때때로 "아이고~ 내 이렇게 해 먹고사는 거 보면 엄마 놀라 나자빠지겠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농담 같은 혼잣말 이면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늘 깔려있다.

 

언니네 식구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하루 정도 휴가를 내고 집에 가만히 들어앉아 보면 어떨까 한다. 쉬고 싶어 휴가를 내도 집에 못 있고 어디론가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나지만, 하루 정도는 꼼짝 않고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먹고 밤이 맟도록 혼자가 되어서, 엄마가 느꼈을 그 고독이 뭔지 느껴보고 싶다. 언제나 혼자 있는 게 편하다 하고 혼자서 돌아다니고 밥 먹고 뭐든지 잘 해냈던 우리 엄마가 '혼자 먹으니 밥이 하나도 맛이 없다'라고 말했던 게 어떤 의미일지, 그게 어느 정도일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엄마가 겪어내야 했던 그 육체의 고통은 할 수 없지만 엄마의 마음, 생각, 걱정들을 내 몸과 마음과 머리로 한 번쯤은 그대로 느껴보고 싶다.   

2016년 3월 24일


엄마가 암환자라고 해서 우리 집에서 먹는 음식이 달라지진 않았다. 병원에서도 괜히 민간요법 같은 거 한다고 이상한 거 먹지 말고 아무거나 잘 먹는 게 좋다고 했고, 보통 낮에 시간이 나는 아빠는 엄마가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도 함께 돌아다니며 맛있는 걸 먹곤 했다. 하지만 저녁밥을 먹을 때면 엄마는 항상 혼자였다. 투병기간의 2/3 이상은 혼자 밥을 차려서 혼자 먹고 한참 후에 들어오는 나를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내가 혼밥을 잘 먹는 것도 엄마한테 보고 배운 거라 난 그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혼자 먹으면 밥이 맛이 없어'라고 말했을 때 머리를 꽝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이제부터 엄마랑 저녁 한 끼 정도는 같이 먹어야지 다짐했을 때 이미 엄마는 소화도 더 어려워지고 여러 가지로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있었다. 사실 내 다짐이 뭔가 변화를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회사 마치고 암만 서둘러 집에 와도 엄마랑 저녁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었고, 시간이 있다고 해도 아픈 엄마에게 내 손으로 밥상을 차려주기보다는 퇴근길에 가끔 별식을 테이크아웃해 오면서 생색내는 정도였다. 엄마가 혼자 먹는 밥이 맛없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잘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내가 혼밥을 너무 잘 먹는 사람이라서 그게 어떤 감정인지 전혀 이해 못했던 것이다.


뜬금없이 이 육교 지나면 갈 수 있는 풍천장어구이집이 생각났다. 엄마 힘나라고 퇴근길에 전화 주문해서 픽업해갖고 집에까지 걸어가던 길목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사갔던 장어는 엄마가 먹질 못하고 언니랑 형부 입으로 쏙 들어가고 끝났지. 그래도 엄마는 가끔 장어 사 오라고 직접 나한테 주문할 정도로 좋아했던 거 같다. 조만간 한 마리 사서 나 혼자 다 먹어야지.   

2016년 4월 4일


내가 공감력이 좀 더 커서 일찌감치 이해했다면 조금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내게 충분히 있는 이 요리에 대한 재능을 미리 발현시킬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내 한 몸 잘 챙겨 먹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어쩌면 영원히 안고 가게 될 엄마에 대한 지금의 이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일찍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엄마가 느꼈을 외로움, 혼밥이 지긋지긋해서 누군가와 같이 밥 먹고 싶은 마음, 요리를 하고 내손으로 밥을 해 먹기는 귀찮은데 뭔가 먹어야 하고,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혼자 식당에 갔는데 아픈 몸이 되니까 괜히 마음이 그런 거, 생이 언젠가 끝난다는 선고를 받았는데도 밥은 계속 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 매끼 먹는 밥이 단지 생명 부지하기 위한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 때, 식탁 위 마주 앉은 나를 그리워하며 꾸역꾸역 밥을 집어넣었을 엄마의 마음을 난 왜 더 일찍,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엄마가 있을 때 엄마를 너무 외롭게 했다. 혼자서 밥을 잘 먹는 거랑은 아주 다른 문제인데 무슨 근거로 엄마가 외로움을 잘 안타는 사람이라 단정 지었던 걸까. 아픈 것도 서러운 엄마에게서 먹는 낙을 빼앗은 데 나도 한몫한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많이 속상하다. 우리 엄마는 맛있는 거 하나씩 먹으면서 개구쟁이처럼 웃고 좋아하던 귀여운 사람이었는데 아프고 나서는 뭘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을까. 그걸 한번 물어볼걸 그랬어.  


마지막으로 입원해서 1차 항암을 마친 엄마에게 아빠가 다시 갔더니 주머니에 초코바를 넣어가지고 있더라고 한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단거 미리 사놨어. 이게 먹고 싶더라고. 이런 걸 먹어야 돼'라고 했다는 엄마. 우리 엄마는 항암 해서 식욕이 떨어진 게 아니었고, 사실은 가슴이 답답해서 그랬던 건데 그것도 모르고 신부전 환자식이 맛이 없어서 일반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둥 영 엉뚱한 데 애를 썼던 내가 너무 한심하다. 엄마는 분명 입맛을 올리려면 초코바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겠지. 바보 엄마. 자기가 밥을 왜 못 먹고 있는지도 모르고...

2016년 4월 15일


지난 1월 말쯤, 역에서 걸어오다가 골목 접어드는 길에 뻥튀기 트럭이 있어서 뻥튀기 두 봉지를 사 가지고 집에 들어갔는데, 오늘 오다 보니 똑같은 트럭이 또 서 있다. 한 봉지에 삼천 원 두 봉지에 오천 원이라 소화 안 될 때 간식으로 먹으라고 엄마가 좋아하는 걸로 골라서 두 개 샀는데 정작 엄마는 거의 맛보는 정도로만 먹고 아빠랑 형부가 많이 먹었지. 2월에도 한동안 봤던 거 같은데 그 새 누가 다 먹어치웠는지 집에는 없다. 단 거 엄청 좋아하는 울 엄마가 진단받고나서부터 암세포가 당을 먹고 자란다며 달다구리를 딱 끊었지. 나한텐 단 거 그만 먹으라고 하면서도 찬장에는 맨날 과자나 초콜릿을 숨겨놓고 입이 심심한 저녁에 슬- 꺼내와서 테레비 보며 같이 먹곤 했는데, 엄만 어떻게 그 좋아하는 군것질을 그리 모질게 끊어낼 수 있었을까. 그만큼 낫고 싶었고, 나을 거라 믿었고, 오래 살고 싶었던 거였겠지.

2016년 3월 18일


천국에서도 매 끼니 밥을 챙겨 먹는 시스템인가 모르겠다. 안 먹어도 배불러서 음식 자체가 없는 곳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엄마가 거기서는 혼밥 하지 않길 바라본다. 혼밥을 잘하는 건 아는데, 혼밥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혼자 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다른 사람 평생 혼자 먹을 밥을 다 먹은 것 같으니까, 지금 곁에 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남이 혼자 밥 먹는 꼴 못 보는, 귀찮을 정도로 자상한 사람이랑 늘 겸상했으면. 사람 사귀는 거 좋아하니까  매 끼니 다른 사람들이랑 재미있게. 밥 절대 거르지 말고. 좋아하는 달달한 것도 많이 많이 먹고. 나 여기서 이렇게 잘해 먹고 있는 것도 한번 봐주고. '가시나 저렇게 할 수 있으면서 내한테 상도 한번 안 차려줬나' 하면서 화내지는 말고. 살면서 더 연습할 테니까.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내 평생의 내공을 다해서 엄마한테 매일매일 밥 차려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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