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탑승 수속'을 마치고 마침내 비행기에 '탑승'.
탑승권에 적힌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머리 위 선반에 짐과 외투를 넣고 자리에 앉으면 가벼운 피로가 몰려온다.
이제부터는 비행기 내부 관람. 이륙과 착륙, 하늘을 나는 놀라운 경험의 시간도 기다리고 있다. 외국인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한국어 외에 중국어, 영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안내 방송하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좋아선지 언어들이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외국어를 익히고 싶은 의욕이 강하게 생기는 순간이다, 다시 사라지곤 하지만...
경험의 확장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이 몸 세포를 깨운다.
비행기
지금처럼 입사가 어려운 때가 아니어서 졸업 전에 취직을 하고 마지막 겨울 방학 중 10여 일간 전국에 걸쳐있는 그룹 자회사의 생산기지를 돌아보았다. 당시 가장 경이감을 준 것이 조선소였다.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것에서 숭고미를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배보다 비행기를 더 많이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비행기가 없거나 보편화되기 이전, 모더니즘의 대부 보들레르가 살던 시절엔 거대한 배와 항구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에서 보들레르가 배에 느낀 경이를 이렇게 언급했다.
(보들레르의 글을 소개하기 전에 참고로 Art, 예술의 기원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Techne 테크네-테크닉이다. 당시 테크네에는 배를 건조하는 기술, 의술, (아마도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시민을 설득하는 웅변술 ... 등등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art를 '예술'이라고 해도 '기술'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주 멋진 광경이나 기술에 우리는 '예술이다' 라고 말하곤 하니까. 돌고래같은 비행기, 공항, 승무원의 각 역할 수행 등 멋지게 구현해냈을 때 넓은 의미로 예술이라 말하고 싶다. 철학자 듀이도 일상 생활과 예술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보들레르는 떠나고 도착하는 장소도 사랑했지만, 움직이는 기계들. 특히 대양을 가로지르는 배들을 사랑했다. 예를 들어 그는 '배를 볼 때 느끼는 심오하고 신비한 매력'에 대해 썼다.
그는 '카보퇴르'라고 부르는 바닥이 평평한 보트를 보러 파리의 포르 생 니콜라에 가기도 했고, 그보다 큰 배들을 보러 루앙과 노르망디 항구에 가기도 했다. 그는 그런 배들을 만들어 만들어 낸 과학 기술에 감탄했다. 그렇게 무겁고 잡다한 것이 어떻게 그렇게 우아하고 응집력 있게 바다 위를 움직일 수 있는지. 그는 커다란 배를 보며 "거대하고 강하고 복잡하지만 민첩한 생물. 활기가 넘쳐나는 동물, 인류의 모든 한숨과 야망에 괴로워하며 숨을 몰아 쉬는 동물"을 생각했다.
이륙
오후 비행기, 해가 질 무렵, 자연과 인간의 무수한 노력이 함께 만들어낸 이 시각적 스펙터클,
나는 사랑한다.
육중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오래전 고교 물리시간에 배웠던 베르누이의 정리와 같은 것을 떠올려 이해해보려고도 하며 이 놀라운 경험에 따르는 불안을 잠재워보곤 한다.
커다란 비행기들을 보면 우리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비행기들 자체가 "거대하고" 또 "복잡한" 생물이며, 이 생물은 자신의 크기와 대기의 낮은 층의 혼돈에 맞서 고요히 창공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그러한 것이 터미널에 정지하여 화물을 나르는 수레나 수리공들 위에서 거대한 몸을 쉬고 있을 때면, 그것이 일본까지 날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몇 미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과학적 설명과 관계없이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겐 비행기가 주는 비행의 불안을 누그려뜨려 주는 몇 가지가 있다. 돌고래같이 뭉툭하게 생긴 비행기의 형태, 같이 탄 사람들 - 동행한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생면부지의 다른 승객들조차 강한 공동체로 느껴진다, 승무원들의 존재와 미소, 기내식, 기내 매거진 등이 그렇다. 약간의 불안을 극복하면, 이륙 과정과 비행은 지상에서는 여간해서 만날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해 준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활주로 출발점에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기계 안에서 창밖을 보면 낯익은 크기의 풍경이 길게 내다보인다. ... 그때 갑자기 엔진의 억제된 진동과 더불어 (주방의 잔들이 약간 떨 뿐이다) 우리는 완만하게 대기 속으로 솟아오르며, 눈이 아무런 방해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대한 시야가 열린다. 지상에서라면 한나절이 걸릴 여행을 눈을 아주 조금만 움직이는 것으로 끝내버릴 수 있다.
이런 이륙에는 심리적인 쾌감도 있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비상(飛上)에는 큰 에너지와 많은 준비와 계기가 작동한다. 혼자서 해 내기 어렵다. 비행기의 이륙도 그렇다. 정비사, 비행조종사 외에 관제탑의 수많은 스텝이 정교하게 움직인다. 일단 굉음과 함께 엄청난 가속도의 이륙 과정이 끝나면 평온한 운항이 이어진다, 가끔 대기의 변화로 격하게 흔들릴 때도 있지만...
구름과 저 아래 축소판 지형이 펼쳐진다. 이어 기내식을 준비하는 반가운 부산스러움과 음식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언제 그렇게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라도 했냐는 듯 일상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기내식
기내식은, 이륙 후의 평온이 약간 무료해질 즈음, 온통 기계가 주는 압도적인 광경에 취해있던 나의 관심을 음식이라는 좀더 부드럽고 일상적인 것에로 옮겨준다. 에너지와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 듯한 기내에서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안도감은 배가된다.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고, 차려주는 음식이라면 왠만해선 고마운 내겐 기내식은 작은 행복이다. 중국 항공의 기내식은 대체로 따뜻하고 소박한 음식이 제공되고, 일본 항공 기내식은 대체로 정갈하고 차가운 음식이 제공되었다. 따뜻한 물이나 국물 없이 제공되던 차가운 일식 초밥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기내식이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아기자기하면 아기자기한 대로 행복한 포만감을 선사해주었다.
만일 부엌에서 시식을 했다면 평범하거나 심지어 불쾌하게 느껴졌을 음식이 구름이 있는 곳에서는 새로운 맛을 띠고 구미를 돋운다(파도가 치는 절벽 꼭대기로 소풍을 가서 먹는 치즈 넣은 빵과 같다). 전혀 집 같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기내식을 받아들이고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는 차가운 롤빵과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감자 샐러드를 먹어가며 지구밖의 풍경을 차지한다.
( 이상 인용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 정영목 옮김, 이레 )
비닐에 싸인 물티슈, 일회용 포장된 물, 일회용 도시락, 일회용 수저, 비닐에 싸인 빵 등... 엄청난 일회용품 사용에 걱정이 되지만 위생상 필요하고, 분리수거를 잘 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생각으로 완화하며 맛있게 먹었다. 일회용 수저나 포크 나이프, 용기 비닐 등... 모두 썩는 옥수수 전분 재료로 만들고 대신 비행기 운임을 조금 더 올리면 나는 기꺼이 그 비행기를 예약할 것이다.
착륙
1시간 50분의 비행. 이제 착륙할 시간. 앞 좌석에 부착되어 있는 테이블을 제자리에 두고, 풀었던 좌석 벨트를 다시 조인다. 지상에서 하늘로 이륙땐 엄청난 가속도 운동, 하늘에선 기류를 타고 등속도 운동, 엔진을 끄기도 하는걸까? 하늘에서 지상으로 착륙할 땐... 중력을 적절히 이용해서 감속 운동? ... 고교 물리시간이 도움 되는 순간이다. 큰 원을 그리면서 비행기가 서서히 선다.
비행기가 무사히 도착했다.
안도.
다시 좌석 벨트를 풀고 머리 위의 짐을 내리고 통로에서 차례를 기다려 비행기에서 내린다. 이후부터는 공항 탑승 수속의 복기다. 출국때보다 조금 더 간단하다. 출국때 한번 해 본거지만 다른 나라이니 긴장은 된다.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이동한 후, 공항입국심사를 통과하고( 마찬가지로 여권과 탑승권, 이번엔 '입국'심사표 준비 ) 출구로 나간다. 맡긴 짐이 있으면 기다려 찾는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선물 가방 등이 늘어나 이 과정을 거치곤 한다.
공항에서의 짐을 분실하는 것이나 가방이 바뀌는 등의 에피소드는 영화의 단골 소재.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도 싱글 중년 여성 마사코의 등장이 핀란드 공항에서 짐을 분실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있으면 만나는 시간.
안전 운항에 수고해주신 승무원분들, 고마와요.
공항& 비행기 관련
2. 공항 단상
3. 비행기, 이륙, 기내식
비행기가 우리가 1분 1초 숨쉬는 대기를 오염시키는 강력한 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글을 처음 쓸 때처럼 낭만적이고 설레는 마음만으로는 이제 비행기를 대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1년간 자동차를 타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 택시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이동수단으로 인한 대기오염 감소를 위해 애썼다 하더라도, 장거리 비행 한 번으로 이런 노력이 무색해진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고요.
내가 저 멋진 상공에서의 스펙타클을 보면서 발생시킨 대기 오염.
그 비행기 아래 지상에서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른 분들과 생명체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내가 그 공기를 그대로 마신다는 사실, 뒤늦게인식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 갈 여행, 한 번.
장거리 비행, 단 거리로.
되도록이면 비행기 대신 철도나 배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어서 통일이 되어
대륙횡단 열차타고 중앙아시아 지나 유럽을 가볼텐데요.
평화통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여, ver 2.0 입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지난주에 미국AAS(Association for Asian Study)학회의 한 세션 발표를 위해 생전 처음 13시간 걸리는 미국행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내일 저녁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데, 마침 이 글의 조회수가 '7'000을 돌파했네요. 보잉747 이런 고유명사도 생각납니다.
어려서부터 주말영화 - 주로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 -를 보고 자라 미국에 가고 싶기는 한데, 아직 갈 일이 없었고, 13시간 걸리는 비행도 상당히 피곤할 것 같고, 무엇보다 비행기 삯도 만만찮고, 총기 사고는 무섭고...
생명이 소중하지 총기 제조업 관련 비즈니스에서 얻는 이익, 일자리, 로비 댓가로 받은 정치자금이 주는 이익 등이 중요한게 아닌데...남의 불행 위에 세운 이익과 행복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총기에 오히려 자기 자신 혹은 가족을 잃는 이 거대한 아이러니를 지속하는 나라,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10대, 청소년과 청년,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목숨이 어이없게, 실로 어이없게 총기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이상한 나라, 미국.
갈수록 총기 규제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져가니 빠르고 힘찬 속도로 잘 진행되어 미국에 사는 사람들, 잠깐 다녀가는 사람들, 모두 총기로부터 안전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