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미 あたみ Atami Onsen Ryokan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50분
아타미의 한 온천여관에 도착했다.
철도로 이동하는 중에 조금씩 흐려지더니
도착할 즈음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타미(熱海)
이름이 보여주듯 바다에서 온천수가 솟아나온다고 한다.
온천 여관은 온센 료칸(温泉旅館 おんせん りょかん Onsen Ryokan),
노천 온천은 로텐부로(露天風呂 ろてんぶろ Rotenburo)라고 한다고.
여장을 풀고,
일본 전통 의상 유카타로 갈아입고서
가볍게 온천을 했다.
해안가 온천 휴양지여서
탁 트인 바다.
안개비로 시야가 흐렸다.
온천을 하려면
이 고풍스런 목조 아케이드 계단을 내려가서
정원을 가로질러 간다.
목조 계단은 약간의 커브를 연출하여
가파른 경사를 완만하게 다듬어주었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풍광이
계단 좌우 목조 벽 유리창으로 들어왔다.
목조 아케이드 덕분에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다.
조금 폐쇄된 느낌의 회랑에 들어오는
바다와 정원의 풍광,
간혹 내리는 비나 눈...
이것이 일본인들이 즐기는 그 무엇일 것이다.
부슬비가 내려
운치를 더해 주었다.
온전히 자연이 빚어내는 풍광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이를테면 이런 유리창과 나무 창틀
유리표면에 만들어진 약간의 장식,
담쟁이 넝쿨 등이
바깥 풍경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이런 장면에도
말로 다 하지 못할 그 어떤 분위기가 있다.
나무회랑을 빠져나와
비를 맞으며
바다가 곁에 있는
아담하고 한적한 일본식 정원을 가로질러
따뜻한 온천수에 잠기러 가는 시간...
詩적인 순간이다.
창 밖 정원이나 먼 경치를
조용히 보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
중국과 일본 여행 이후
동양의 문화와 예술에 부쩍 관심이 생겨
이책 저책 찾아 읽어보다
‘차경(借景)’이라는 미학적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이 일본 차경의 미학이라고 짐작한다.
차경은 한국의 미학이기도 하다.
한국의 차경이
자연을 크게 다듬지 않고 끌어들이고 차경을 바라보는 이도 풍광 속으로 하나가 되도록 열어둔다면,
일본의 차경은
바라보는 이를 상대적으로 폐쇄된 느낌의 공간의 건축물 속에, 마치 자궁 속으로 들어간 듯하게 숨겨두고 조용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미감인 듯하다.
내겐 둘 다 좋아 보인다.
창호지 격자 여닫이 문에
일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창호지를 바른 작은 덧문.
찬바람을 막으면서도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다.
온천 후 방에 들어서니
섬세하고 다채로운 저녁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한정식에 해당하는 요리로
계절 재료로 준비하는 가이세키(かいせき) 요리라고.
기모노를 입은 분이 조심스럽고도 익숙하게 식사를 도와주었다.
상을 가득 채운 다양한 형태와 색의 그릇들,
음식들이 가지런히.
냄비 요리에 불 붙여주는 소리가 정적을 깨 주었다.
나무밥통과 그 속에 담긴 밥.
아주 어렸을 때 보고 이후엔 보지 못했던 나무 밥통.
밥을 더 청하는 이의 밥그릇 속으로 옮겨질
잘 지어진 기름지고 고슬고슬한 여분의 하얀 밥.
튀김은 바삭하고,
조금씩 담긴 반찬은 하얀 쌀밥 위에서 색이 더 돋보였다.
형태와 색감, 질감에 잘 매료되곤 하는 나는
정갈하고 정교한 음식들에 신선함을 느꼈다.
가이세키 요리는
미각과 촉각 못지않게
시각적으로도 감상할 것이 많은 그림이나 공예 같다.
준비하는 사람은 예술작업하듯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그릇을 고르고
상을 차려내지 않았을까.
인공적인 문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옛사람들이 자연에서 지각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인상과 변화의 미세한 스펙트럼을 지각하지 못할 것 같다.
에스키모인들에게 눈을 묘사하는 어휘가 무척 많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기기들과 관련하여 계속 생성되는 수많은 어휘에 익숙해지고 있다.
새로운 정보와 상품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의 삶과
옛사람들의 삶을 같이 생각해본다.
단조로워 보이는 옛날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사회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이든 당대의 독특한 풍요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아타미는 감귤(미깡 みかん)로도 유명하다고.
일본 사람들은 겨울 따뜻한 화로 가까이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두 번째 날이 저물어 갔다.
그다음날 새벽,
노천 온천, 로텐부로에 갔다.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이 노천 온천은
그래서 바다를 보며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특별한 시간을 주었고,
내리는 비는 동시에 세 가지의 물을 감각하게 해주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빗물,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온천수,
저 멀리 눈에 가득 들어오는 아련한 바닷물까지.
감각들은 그 감동을 마음으로 옮겨주었고
그곳은 치유의 공간이 되었다.
이른 아침 목욕을 마치고 오니
이부자리가 정돈되어 있고
정갈하고 소박한 아침 상이 차려져 있었다.
밥과 일본식 된장국 미소시루(みそしる 味噌汁)
부드러운 탕에
계란찜
샐러드와 생선구이
장아찌 몇 점
저녁에 비해 소박하고 부담 없는 아침 식사
흐린 오전의 차분함 속에
나베 데우는 조용한 소리.
이렇게 나는
일본 료칸에 매료되었다.
세심하고 반듯한 손길을 켜켜이 느끼며
일본의 결 속으로 들어갔다.
하얀 봉투 디테일 :
료칸 방값에는 석식과 조식,
이부자리를 펴고 개는 서비스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 팁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서비스해주시는 분의 정성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사례비를 흰 봉투에 넣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작은 격식에 함축되어 있는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