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차가운 - 긴장된 공존의 느긋한 겨울 온천지 풍경
얼마만의 료칸인가...
도쿄 근교 아타미,
이시카와 현의 야마나카와 야마시로 료칸의 감동은 내게는
그 어떤 음악 작품, 문학 작품, 미술 작품, 영화 작품이 주는 감동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8년 만의 료칸.
TV로 일본이 소개되면 열심히 보는 것으로 감흥을 재현하곤 했다.
유후인의 한 료칸.
저녁 식사.
일본적인 미감이 드러나는 단순하고도 선명하고 화려한 그릇들, 다소 탐미적인 식감을 추구하는 음식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동그란 미니 풍로.
돌로 만든 풍로.
공기가 드나들 수 있게 구멍이 뚫려있고, 일회 분량 정도의 작은 탄이 들어가 작은 돌솥 위에 놓인 고기와 버섯과 고추 등의 야채를 적절히 익혀준다. 원래 재료의 맛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미니멀한 요리.
이 료칸은 그릇에 멜라민 재료,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아마도 100엔 샵 같은 곳에 가면 구입할 수 있을 듯한...) 도자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값이 싼 게 문제가 아니라 제작 비용을 무리하게 줄이면서 인체에 해로운 납성분의 도료나 안료를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 그리고 아예 장식이 없는 게 나을 듯한 장식 등이 야마시로의 한 유서 깊은 료칸의 홈페이지에 왜 그릇이 강조되어 있었는지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너무 좋은 곳에 가지 않는 것도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으면 좋아서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나름대로 좋고, 다음에 더 좋고...
날이 밝았다.
창호지의 이런 디테일... 일본에 있음을 실감.
나는 일본의 이런 디테일을 사랑한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곳엘 가도, 일본 여행을 만족스럽게 해주는 것에 이런 디테일이 있다.
그래서 내게 일본 여행은 어딜 가도 괜찮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일본 지도를 펼쳐놓고 눈감고 선택해도 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단, 원전사고가 난 곳 반경 30km 좀 더 확장해서 100km는 의식적으로 피한다. 이런 여행지 선택 하나도 세상의 정책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보면, 내가 사랑하는 경주와 부산은 어찌하면 좋을까...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 월성, 고리 원자력 발전 고밀도 단지... 그 고위험 지역에 한민족 천년 고도 경주와 여름이면 인산인해가 되는 부산이 포함된다고 한다. 북유럽 선진국가에서는 2030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에 들어갔다는데.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 충당 가능하다는데...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정책에 반영이 되는 투표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 누가 우리를 살리고 누가 우리를 위험으로 내모는지. 이번 경주 부산 지역의 지진으로 이 문제에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변화를 기대해봄직하다.
일본에 오면 항상 하는 생각.
땅 전반이 흔들리는 나라에 어떻게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지표면 아래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마그마가
무기질 듬뿍 함유한 온천수를 제공해주어 덕분에 아침마다 즐겁게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다.
온천수에 삶은 반숙 계란.
양이 많지 않고 소박한 료칸의 아침 식사는 맑은 공기와 더불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이 료칸은 식당이 별채에 있어 객실을 나와 아침을 먹으러 다녀왔는데 여기저기에서 수증기가 보였다.
이런 온천 마을의 풍경을 잘 재현해낸 유화 한 점이 료칸 건물 1층에 걸려있었다. 일본에서 유독 인기가 높다는 인상주의 회화 풍의 그림.
1층에는 큼직한 원형 화로가 있어 온화한 느낌을 배가시켜주었는데 가운데 화로는 은각사의 은빛 모래 정원을 생각나게 했다. 일본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적용, 곳곳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가벼운 아침 식사에 맑은 공기, 그리고 은각사 마른 산수 정원 양식을 차용한 듯한 화로를 통해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일본 료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타원형의 잔받침은 조식으로 식전에 먹은 달걀을 생각나게 했다.
료칸에서 제공하는, 요즘은 파우치라고 많이 부르는 주머니를 들고 다녔는데 핸드폰과 지갑 등을 넣어 다닐 수 있어 간편하고 요긴했다. 대체로 미니 금고가 객실마다 있어 주머니 조차 필요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요즘은 핸드폰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에 따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지퍼 대신 주머니 입구를 닫는 끈이 미니 가방끈의 역할도 해서 일반적인 지퍼 파우치보다 용량도 크고 간편.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창 밖의 자연 풍경과 맑은 대기를 접하는 것. 일본에서는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는 참 좋은 시간이다. 이 료칸은 미네랄이 풍부한 독특한 녹색 온천수 원류를 자랑했는데 그 온천수의 질감이 잊히지 않는다. 이렇듯 료칸마다 자랑하는 것이 한두 가지씩은 있고, 난 그런 다양성이 마음에 든다.
어떤 료칸은 유서 깊은 대들보와 명품 도자기를, 어떤 료칸은 화려하고 격조 높은 가이세키 요리를 자부한다. 어떤 료칸의 경우 이제는 옛 영화를 추억할 뿐 잊혀가고 있지만 그 탁월한 입지로 인해 아침 창을 열면 눈 내리는 숲의 차경이 방 안의 한 점 그림이 되는 감동으로 자존심을 지켜간다.
일본의 료칸이 대체로 그렇듯 료칸에서는 인근 역까지 송영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어제 왔던 유후인 역. 기차 시간이 넉넉해 주위를 산책했다.
이렇게 턱 하니
바로 앞에 산이 불쑥 솟아올라와 있다, 평지에.
판과 판의 충돌로 솟아오른 거 아닐까.
그 아래는 부글부글 끓고 있고...
하지만 산 높이가 제법 되다 보니 눈이 내리면 녹지 않고 쌓여 하얀 설산을 이루는 광경 - 뜨거움과 차가움의 긴장된 공존.
논밭이 있는 평지에 우뚝.
흰색으로 빛나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새삼 지진이 많은 일본의 지리적 성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자리에 앉아 싸우던 두 사람이 점점 격해져 갑자기 둘 다 벌떡 일어나 열을 내듯이 저 아래 지층에서 거대한 판끼리 충돌해 지표면을 들고일어나고 그 틈으로는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되고....
그런 땅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심적 습성을 헤아려본다. 조심하고 긴장하고 지진으로 파괴되면 다시 깔끔하게 치우고 가진 것을 최소화하고... 나라면 그렇게 될 것 같다.
이름난 휴양지이지만 논밭이 있는 시골.
시골이어도 깨끗한 일본.
저 푸른색 합판 문 - 심지어 아름답게도 느껴진다.
추상회화 같은.
열차시간이 다 되어 일본 사람들이 사랑하는 기차를 타고서
다시, 하카타 역
타일로 숲을 형상화한 작품이 잠깐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진한 라멘 한 그릇을 점심으로 먹었다.
쇼핑몰이 대체로 그렇듯 특별히 그 지역의 개성을 느낄 수는 없는 하카타역 쇼핑몰.
그러나 어디에 있어도 대체로 기본은 하는 일본의 라멘집, 우동집. 하카타 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맛있게 먹고 잠깐 쇼핑. 과자류를 사는 시간.
야마나카나 야마시로의 작은 역이나 료칸에서 판매하던 과자들에 비해 더 화려했다.
하카타 역에서 일본 과자를 선물용으로 샀는데 타원형의 알을 모티브로 한 찰떡이 군계일학.
온천수에 삶은 계란, 화롯가에서 마시던 커피의 잔받침, 그리고 이 과자.
타원형의 향연...
그리고 공항.
다자이후의 한 라멘집 노랜에 있던 매화,
공항 비행기 꼬리에서도 본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자기 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 더 빛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