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haedal Dec 17. 2020

플라스틱 일기 Day 17 반찬가게

오늘 오랜만에 반찬가게에 들러 쌓아 두었던 플라스틱 반찬 케이스를 가져다 드리고 반찬을 주문하고 왔다. 유난히 맛있는 김장 덕분에 반찬 가게 갈 일이 줄어서 정말 오랜만에 발걸음을 했다. 주인아주머니도 반갑게 맞아 주셨고, 가져다 드린 투명 반찬통도 기분 좋게 받으셨다.



베이킹파우더와 식초 등으로 깨끗이 씻어서 말렸다고 말씀드리고, 매대의 반찬을 둘러보고 가져간 그릇에 맞춰 이것저것 주문하고 그릇을 드리고는 내일 오후에 찾으러 오기로 했다.


할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져서 예측 불허인 나의 요리 솜씨, 그리고 식구가 많지 않아 밥과 국, 메인 요리에 해당하는 건 직접 하고 밑반찬이나 손이 아주 많이 가는, 혹은 난이도가 너무 높은 반찬이나 요리는 종종 사 먹곤 한다. 우리 동네 반찬 가게는 큰 마트와 인접해 있어 가기도 수월하다.


진화


처음엔, 주시는 대로 까만 비닐봉지에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든 반찬 여러 통을 넣어왔다.


1st 업그레이드, 비닐봉지 대신 보냉 가방

신선도를 어느 정도 요하고 물이 샐 수도 있어서 방수 보냉백을 가져가거나, 외출했다 들어오는 길에 들를 때는 접을 수 있는 장바구니나 받아왔던 비닐봉지를 챙겨가서 플라스틱 케이스에 든 반찬을 넣어왔다. 반찬통은 반찬명이 붙은 라벨을 제거하고 씻어서 분리 배출했다.



2nd 업그레이드, 반찬통 재사용

플라스틱 케이스를 분리 배출하는 '재활용'이 아니라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잘 씻어 말려 돌려드려서 '재사용'하면 어떨까 싶었다. 한 번 갖다 드렸더니 좋아하셔서, 더 이상 분리 배출하지 않고 재사용하기로 했다.




3rd 업그레이드, 라벨 유지

라벨을 매번 떼기도 번거롭고 어차피 반복되는 메뉴가 있기 마련이어서, 그리고 라벨 위에 추가해서 붙여도 되니 라벨을 두고 그대로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세척해서 잘 말려 갖다 드렸다.



4th 업그레이드, 반찬통 대신 밀폐용기

한 번에 다 먹는 것도 아니어서 그릇에 옮겨 담게 되는데, 플라스틱 케이스를 매번 세척하는 것도 번거로워서 보냉 기능이 있는 가방에 그릇을 담아 가져 가서 그 자리에서 옮겨 달라고 했다.



5th 업그레이드, 완성. 선주문

그릇을 전날 장 보러 갈 때 가져가서 담아달라고 미리 주문하고, 다음날 그릇을 찾으러 갔다. 마트에서 올 때는 배달시킬 때가 많긴 하지만 직접 들고 올 경우, 무거워진 반찬까지 들면 상당한 무게였기에 한 번 더 걸음 하는 것이었지만 무게가 분산되어 좋다. 어쩌다 가져간 그릇보다 사고 싶은 맛있는 반찬이 더 많을 때가 있는데, 그런 때만 포장된 채로 사 와서 이번처럼 세척 후 갖다 드리거나 비닐에 든 것은 분리 배출한다.



맛있는 반찬 가게가 동네 집 가까이 있는 것도 큰 복이다. 들깻순 반찬 같은 경우, 삶은 들깻잎에 두부를 으깨 넣어 소금에 심심하게 무쳐낸 반찬인데, 살면서 처음 먹어 본 음식이다. 짜지 않아서 금방 다 먹곤 하는데 우리 동네 반찬 가게의 이 들깻순은 정말 맛있다. 어린 들깻잎을 소금에 볶아낸 반찬도 맛있다. 한 가지 식재료로 다양한 반찬의 변주가 펼쳐진다.


특정 동네 가게에만 있는 메뉴 - 로컬리티의 매력


단골이 되니, 주인아주머니 예상보다 조금 덜 팔린 반찬, 손님이 주문해두고 찾아가지 않은 반찬 등은 그냥 주시기도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가게가 좋은 점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와 달리 이렇게 안부 인사와 함께 오가는 정.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시스템의 일부인 직원이 하지 못하는 것을, 규모는 작아도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인이 계셔서 가능한 넘쳐나는 덤.



작가의 이전글 플라스틱 일기 Day 2 한살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