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일기 Day 28 샴푸

세제 3

by 해달 haedal

세제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지만, 혹은 세제라고 인식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몸에 사용하는 세제라고 할 만한 것이 두 가지 있는 것 같다. 샴푸와 바디샤워.


바디샤워라고 하는 전신용 물비누는 고체 비누로 쉽게 대체 가능하다. 향이 더 좋고 쉽게 거품이 나는 물비누는 세탁용 액상 세제의 더 고급 버전이라 생각한다. 옷은 몸에 닿기 때문에 피부만큼은 아니지만 세탁 세제도 샴푸처럼 해롭지 않은 친환경 세제를 사용해야 한다. 돌고 도는 그 물을 우리가 마시기 때문에 더더욱.


진화


오래전에는 샴푸와 린스, 트리트먼트까지 모두 사용했다. 향에 민감해서 샴푸는 향과 디자인 두 가지를 보고 거의 매번 새로운 것을 선택했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향이 없었다. 마트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국내 화학제품을 주로 사용했다.


1st 업그레이드 : 굿바이 린스

린스가 물을 오염시킨다고 해서, 샴푸는 줄이기 힘들기 때문에 샴푸와 항상 같이 사용하는 린스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모발에 영양을 공급하는 트리트먼트만 간간이 사용했다. 샴푸와 린스의, 생산업체의 이익을 담보해주는 관습적인 파트너십을 툭하고 끊어버렸다.


2nd 업그레이드 : 샴푸도 리필

샴푸를 이것저것 구매해서 써보곤 했다. 주로 향과 디자인.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 중에서 이런저런 효능과 식물성 추출물이 강조된 제품을 선택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정해서 이후에는 리필제품을 사용했다. 그런데 거의 항상 지겨움을 느꼈다. 향도 질렸다.


3rd 업그레이드 : 호캉스에서 발견한 고급진 향의 샴푸

오래전 호캉스를 갔다가 향이 정말 마음에 드는 샴푸를 발견하게 되었다. 통을 가져와 브랜드를 확인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매장에 찾아가 구매했다. 값이 만만치 않았다. 용량을 고려하면 시중에 나와 있는 마트에서 흔히 접하는 제품의 대여섯 배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록시땅이었는데 향과 용기 디자인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이 국내 여타 제품에 비해 부담스럽고 수입품이라 탄소발자국이 늘어나므로 한 (두?) 번 구매에만 그쳤다. 용기는 재사용하다가 뚜껑에 문제가 생겨 분리 배출했다. 몸통이 투명 용기이고 라벨도 그럭저럭 잘 떼어졌다.


이 샴푸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플로럴 계열보다 잘 정제된 시트러스 계열, 레몬이나 귤과 같은 과실류의 향이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4th 업그레이드 : 갤러리 같은 매장에서 구입한 친환경 샴푸

여의도 ifc몰이 지척이라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가끔 영화 보러 갔다가 매장이 갤러리같이 근사해서 구매한 샴푸도 있다. 국내 샴푸의 향은 이상하게 질리는 가운데, 또 향이 정말 좋았던 록시땅 샴푸가 너무 비싸 대체품을 찾던 중 들어가 본 이솝이라는 브랜드 매장. 식물성 추출물 베이스에 세정력을 위해 최소한의 화합물만 사용한다고 해서, 록시땅 샴푸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부담되어 구매했다. 그럼에도 수입품이라 가격이 높고, 한 두 번이라면 몰라도 정기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제품인데 수입하느라 탄소발자국이 늘어나 마음이 상쾌하지 않고, 거의 무향이라 샴푸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록시땅 샴푸의 개인적으로 잘 맞고 질리지도 않던 향을 경험한 후라 이 가격을 주고 계속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갈색의 통통한 용기는 재사용 중이다.


수입 고급 샴푸 제품의 경험이 내게 남긴 것은, 값싼 향과 용기 디자인 위주로, 세탁 세제처럼 싼 것을 사서 지겨워질 때까지 쓰던 샴푸 선택에 일어난 변화이다. 내용물의 친환경성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화학적 인공적 향 대신 진짜 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가격을 더 지불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생겼다. 매우 좋은 것을 써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매우 비싼 것을 써보고 나니, 물을 오염시키는 화학 샴푸들의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5th 업그레이드 : 한살림 천연 샴푸

한살림에서도 친환경 제품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찾아보기로 했다. 한살림 샴푸를 종류별로 다 써보다가 그중에서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천연에 가까운 샴푸를 찾아내었다. 당연히 리필해서 꽤 사용했다. 그런데 이 샴푸는 다소 질리는 감이 있었다. 인공향이어서가 아니라, 향이 조금 과했다.


6th 업그레이드 : 창포 비누

머리를 감아도 된다고 설명이 있어 한살림 창포 비누를 구매했다. 조상님들은 단옷날이 되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창포 비누가 오기까지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반쯤 곱슬기가 있는 나의 머리에 비누는 역부족이었다. 창포 비누는 푸른색에 눈이 시원해지는, 향도 괜찮은 비누였다. 세안 비누로 사용.


7th 업그레이드 : 드디어 발견한 잘 맞는 국내 천연 샴푸

마침내 시트러스 계열 향의 샴푸를 찾아냈다. 한살림에서 순차적으로 새로 선보인 샴푸인데 하나는 박하 느낌이 강하고, 하나는 시트러스 계열이었다. 전자는 세정력이 강하고, 후자는 상쾌하고 은은한 향이 샴푸의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전자는 박하 성분이 두피관리를 해주고, 후자는 감귤 성분이 모발 관리를 해준다. 둘 다 천연성분 위주.


나의 몇 가지 원칙 중 하나인,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포장을 최대한 피하고 만약 피할 수 없으면 비닐로 된 상품이나 리필이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에도 부합했다. 게다가 둥글한 느낌의 단순 우직한 용기 디장인도 마음에 들었다. 재사용도 용이.


s_20201217_112829.jpg 현재 사용 중인 샴푸(왼쪽 투명 통)와, 트리트먼트 리필 용기로 사용 중인 이솝 샴푸통(오른쪽 갈색 용기)


요약하자면, 생각 없이 이런저런 샴푸 사서 쓰며 헤매다가, 린스를 쓰지 않다가, 수입 고급 샴푸로 (천연?) 향에 눈을 뜨고, 환경에 이로운 천연 샴푸를 찾다가, 다소 급진적으로 샴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아봤다가 반쯤 곱슬이어서 비누로는 감당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는 한살림에서 향도 잘 맞는 친환경 샴푸를 투명 플라스틱 병에 든 것으로, 다 쓰면 리필 봉지에 든 것을 사서 쓰고 있다.


지금 종착 샴푸 출시 전, 한살림 천연 제재의 린스를 이전 샴푸와 같은 계열로 출시된 것으로 잠깐 쓰기도 했는데 샴푸를 현재 사용 중인 시트러스 계열향의 새 제품으로 바꾸면서 쓰던 걸 다 쓴 후 구매를 중지했다. 다만 영양공급을 위해 트리트먼트를 간간이 사용한다. 친환경 샴푸로 가격이 상당했던 이솝 샴푸 통에 리필 형태로 나온 트리트먼트를 부어서 현재는 사용 중인데, 이것을 다 사용하고 나면 트리트먼트도 대안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헹궈내야 하니 이것도 물 오염에 기여.


우리 집에서 샴푸로 인한 펌핑 용기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다. 분리 배출되어 나가는 샴푸 용기도 나오지 않은 지 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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