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1일, 22일 즈음은 24절기 중 하나인 동지. 이 날을 기점으로 그 다음날부터 밤보다 낮이 길어진다. 올해 2020년 동지는 21일 저녁, 오늘 저녁 7시 무렵이라고 한다. 그전에 이미 어두워져서 밤으로 느껴질 시간이다.
설날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풍습이 있는데, 동짓날도 새알을 먹으며 진정 한 살을 먹게 된다는데 한겨울 매서운 추위와 깊은 밤을 이겨내었다는 의미에서, 그만큼 더 성숙해졌다는 의미로 보인다.
밤이 가장 긴 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날 이후로는 밤 길이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아이러니가 참 매력 있다.
며칠 전 우리 동네 반찬 가게에 들렀을 때 팥죽이 있었다. 사장님이 새알을 넣은 팥죽 전에, 겨울 단팥죽을 판매하셨는데 태안에 가서 좋은 팥을 사서 팥죽을 쑤셨다고 했다. 스티로폼 사발에 랩으로 씌워 한 그릇씩 판매 중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면 마음 편하게 한시적으로 팥죽을 파는 식당에 가서 먹고 와도 좋을 텐데...
개인적으로 단팥죽을 무척 좋아해서 팥죽을 동지 때만 먹지는 않는다. 물론 팥죽과 단판죽은 다르지만. 단팥죽을 상시 파는 식당이나 카페가 잘 없고 여름에 카페에서 팥빙수를 한시적으로, 동지 즈음 식당에서 팥죽을 한시적으로 판매하다 보니, 간혹 마트에서 캔이나 비닐 파우치에 포장된 단팥죽이나 팥죽을 사 와서 데워먹곤 한다.
어쩌다 탈이 나서 소화가 잘되는 부드러운 죽을 먹어야 될 때가 있다. 그때는 죽을 쑬 기력도 없어 죽을 사 먹는데 병원이나 약국을 갔다가 오는 길에 죽 가게가 있으면 먹고 오면서 한 두 끼 분량을 포장해서 사 온다. 가까운 종합병원 내에 죽 체인점 본죽이 있어 이용하는데, 포장용기가 내열성이 좀 있어 보이고 밀폐력이 좋아서 재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회용에 가까워서 사용 횟수나 범위에 제한을 두고 일정 기간 이후에는 분리 배출하려고 한다.
약국에 들를 정도이기만 할 경우에는 동네 일식집에서 죽을 사 먹고 오거나 마트에서 공장에서 생산된 죽을 사 온다. 대체로 캔 위에 플라스틱 뚜껑이 닫혀 있다.
캔은 한 번 개봉하고 나면 이후 산화가 진행되기에 내용물을 덜어내 먹고 남은 것은 유리그릇 등의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 보관하는 것이 정석. 그런데 캔 안에 코팅까지 해가며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어, 다른 그릇이 필요 없게 잔여분을 보관하세요 하는 친절하고 자상한 배려가 느껴진다. 환경에 눈감는다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플라스틱 뚜껑의 밀폐 기능이 제 기능을 못하고, 다만 눈에 잘 띄게 하는 - 그러고 보니 대체로 빨간색, 노란색이 많았다!! - 마케팅 기능이 크다는 글이나 영상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에 포함된다. 더 안 좋은 것은 지구에 가하는 100년 지속되는 오염이다.
작은 뚜껑류는 생수 페트병이나 캔처럼 자원순환이 잘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차곡차곡 모아 플라스틱 방앗간에 가져다주려고 하지만, 안 쓰는 것이 최선.
다행히 라벨은 제거가 잘 되었다.
죽은 일상적으로 먹지는 않으니까, 나만 해도 탈이 나서 죽이 절실한 경우에만 찾는데, 간편식 죽은 대체로 맛이 자극적이어서 위가 약해져 있는 상태로는 질리고 부담스러워 한 두 개 이상 먹기도 힘들다. 흰 죽은 잘 팔지 않는다. 야채, 고기, 참치, 전복 등을 넣어서 부가가치를 높인 죽이 대부분이어서 결과적으로 사실 잘 사 먹지도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밥이나 누룽지를 이용해 죽을 손쉽게 만드는 방법을 접해서 더욱 포장 죽과 멀어졌다.
어쩌다 단팥죽이 먹고 싶어 사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경쟁 업체에서 파우치에 든 팥죽을 출시하여 더더욱 살 일이 없어졌다. 과도하지만 않으면 경쟁이 주는 개선 효과. 독점이 위험한 이유를 손바닥만 한 죽 포장 하나에서도 본다.
최근에는 캔에 든 빙수 팥을 사서 팥빙수도 만들어 먹고, 단팥죽처럼 먹기도 하니 팥죽 관련한 플라스틱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여러가지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몸이 더 건강해야 할 이유를 또 본다.
K-방역으로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된 한국도 3단계 격상을 고민중에 있는 요즘. 영국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고 하고, 내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이 사태. 더 심해질 수도 있고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모두가 우리 인간이 초래한 일. 담담히 받아들이고 개선에 힘 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