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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Jan 21. 2021

Day4 꽃보다 잎

식물 관찰기



대개


꽃은 화사하다.

잎은 싱그럽다.





식물의 초록은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또한 그렇다.


한국어에서 '푸르다'는 Green과 Blue를 모두 함축한다.

푸를 녹(綠), 푸를 청(靑).


이 땅에서 오래 살아왔던 사람들은 서구처럼 천상과 지상을 나누고 다시 천상을 지상보다 높은 것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서양에서 천상은, 하늘은 절대적인 위치를 지녀왔다. 푸른 Blue 색은 천상의 색이고, 코발트 등 청색 안료는 실제로 굉장히 고가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추상화가이자 예술이론가였던 바실리 칸딘스키의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 의하면 Green은 자본가의 색이므로, 천상의 Blue와는 거리도 멀다. 


한국은 땅의 7할이 산이다. 산은 친숙한 삶의 터전이자, 풍경이다.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녹음의 산이 있다. 푸르름이 이어진다.  자연친화적인 정신문화와 생활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왔다. 식물의 푸르름과 하늘의 푸르름은 모두 자연의 품을 이룬다. 



식물은 뿌리, 줄기, 잎, 꽃, 과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푸른 것은 잎이다. 과실도 농익기 전에는 푸른색을 띤다. 줄기도 녹색이지만 가늘어 녹색이 좀 더 압축된 짙은 녹색으로 전개된다. 잎은 연두에서 짙은 녹색의 스펙트럼을 찬란하게 보여준다.



공기정화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간다. 화분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의 키가 자꾸만 커지고 식구도 늘어나서 분갈이를 해주었다. 분갈이 이후에도 쌀뜨물을 꾸준히 주어서인지 잘 자라서 또 분갈이를 해 주어야 하게 생겼다.



분갈이 성가셔


웃자란 한 줄기 뎅강 

잘라 유리병에 넣고 

물 붓고 

며칠 지나고 

몇 주 지나니,


줄기 끝이 

뿌리가 되었다.



또 한 식물 녀석, 

맹렬히 자라나 몇 줄기 잘라다 

생수병 반을 잘라 

물 붓고 넣어두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냥 그대로

몇 달이고 그대로. 


플라스틱이라고 해도 믿을 형국. 대체 플라스틱으로 괜찮을 것 같으니 어딘가에 제안해야겠다. 한 공학박사가 어민들에게 골치 덩어리인, 잡히면 버려지는 불가사리를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생수병에 긴 잎을 잘라 넣었는데 몇 달이고 이대로 있다. 이 녀석들의 시간은 거북이다.


3년 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베란다에서 본 빨간 심지에 하얀 꽃을 드물게 피우던 식물. 분양받아 잘 키워냈다. 한 번 잘라내서 물에 뿌리가 나올 때까지 담가 뒀다가 배양토를 사서 심었는데 그대로 흙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번에 잘라낸 줄기는 뿌리가 아주 튼튼해질 때까지 심지 않고 좀 더 두고 보려고 하고 있다.


식물은 잎을 떨어뜨려가며 스스로 건강을 지킨다. 


잎을 한 번씩 잘라줘야 꽃이 잘 핀다고 하더니, 그대로 놔두니 위로 덩굴 식물이 될 판. 넝쿨이 되어 위로 올라가려던 가는 줄기 일부를 잘라 내서 쓰고 남은 작은 약병에 물 붓고 담아뒀다. 작은 모래주머니 까만 고양이만큼 작아 같이 두고 보니 귀엽다.



꽃 재배에도 이산화탄소 발생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격도 만만찮고 금방 시든다. 전자기기를 많이 이용하는 우리 현대인들, 그중에 하나인 나, 공기정화 역할도 해내고 푸르름으로 눈의 안식도 주는 잎을 가까이 하니 여러모로 흡족하다. 


꽃이 주는 기쁨이 화양연화라면, 잎이 주는 즐거움은 매일 마주하는 아침 공기처럼 싱그럽고 은은하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승진이나 당선 등 화려한 불꽃도 드문 드문 일어나는 일상이고, 심각한 심리적 신체적 경제적 타격을 입는 것도 드문 드문 일어나는 일상이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날도 조금 더 자주 일어나는 일상이며, 있는 듯 없는 듯 별일 없고 별 탈 없이 지속되는 것이 자주 일어나는 일상이다. 


잎은 후자에 가깝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성장을 위한 변화가 맹렬히 일어나고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우리 눈으로, 의식적으로 알아채지 못할 뿐.


시간과 같아서, 기다리면 흘러가지 않는데 기다리지 않고 무언가 다른 것에 몰입하면 시간은 거의 의식도 되지 않는다. 몇 분이나 지켜보다가 지쳐서 잎이 크는 것을 잊어 먹고 어느 날 바라보면 문득, 저 녀석이 언제 나왔지? 언제 저리 커졌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식물과 시간은 많이 닮았다.


그리고 성장하는 형태는 대체로 자신의 모습에 알맞게 커간다. 쌀뜨물을 간간이 부어주고, 가끔 씻겨주고, 햇빛 샤워도 시켜주지만 이는 속도나 영양 상태를 거들뿐 식물은 알아서 커간다. 줄기와 잎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매우 드물게 꽃이 필 때가 있는데 꽃이 피면 이뻐서 좋고, 

대신 잎과 줄기가 쑥쑥 자라나면 풍성해서 좋다. 


다르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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