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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Jan 23. 2021

Day6
식물의 용기와 결단

떨어진 잎새의 재서술


친구가 가지 일부를 잘라 햇반 용기에 흙을 넣고 심어서 3년 전 선물해주었던 식물. 화분에 옮겨 심어 잘 자라났다. 한 해 정도 꽃을 피웠는데 정말 예뻤다. 하얀 바탕에 빨간색 꽃이 작아도 존재감이 있었다. 친구 말이 한 번씩 잘라 주고 또 실내 말고, 베란다 창쪽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좀 힘들게 해야 꽃을 피운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현재 사는 집은 이사 올 때 이미 베란다 확장을 해서 관상용이든 공기정화용이든 화분을 키우면 화분이 실내에 주로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선지 한 번 정도 꽃을 피우더니 이젠 위로만 웃자라고 있다. 쑥쑥 키가 커지는데 꽃은 피우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이 속담이 생각난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위로만 너무 크면 화분과의 조화도 조금 맞지 않아서 중간중간 잘라준다. 또 가지들이 서로 너무 다투면 한 가지 정도는 잘라서 병에 담가 둔다. 그러면 흙이 아닌 물에 담아둔 가지가 하루 이틀 지나면 시들어간다. 그러다 며칠 지나면 다시 기력을 회복한다. 새로운 환경에 당황하고 조금 좌절(?)하거나 저항하려고 기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그런 것 같다. 


한 3주 이상 지나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데 몇 개월이 지나면 뿌리가 풍성해진다. 그런데 물만 먹고 자라서 양분이 모자라는지 새로운 잎이 활발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성장에 최소의 에너지만 쓰는 듯, 조용히 잎을 천천히 내놓는다. 


흙 화분으로 옮겼다가 잘 살아나지 않은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뿌리가 더 풍성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흙의 풍부한 양분에 못 미치는지 물만 먹고 가끔 햇빛 샤워시켜주는 이 친구들은 잎이 아주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중 조금 무리가 되는 듯이 보이는 잎이 있었다. 



식물은 잎과 줄기 뿌리 모두 두런두런 의논을 한 것 같다. 가을이 되면 모든 잎을 떨어뜨려 창문을 닫고 동면에 들어가는 나무처럼 이 식물은 잎 하나를 떨어뜨리기로 중지를 모은 것 같다. 점점 잎에 푸른색이 옅어지더니 어느 날 보니 녹기(핏기?)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잎 하나가 조용히 떨어져 있었다. 



전체를 위해 약한 잎 하나가 희생되거나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서술할 수 있다.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 소설도 떠오른다.



그런 한편, 이렇게도 해석하고 서술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나를 병들게 하는 습관이나 세포, 빛바랜 편견이나 우울감의 뉴런 등이 서서히 자라나 자리 잡으려고 한다. 나 자신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 단호하게 그만둔다. 그리고 나는 건강해진다. 이런 나의 노력에 주위에서는 격려의 빛나는 햇빛과 신선한 물을 즐거이 선사해주고 화분에 부드러운 흙을 마련해 나를 옮겨준다. 나는 강건하면서도 평온한 마음으로 풍요로움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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