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종료를 겪으며 구직자가 된 사람의 마음 사용법

19화 - 삶은 고구마

by 해담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 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합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나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서비스가 끝날 때, 나의 일은 끝나는가.


내 직무가 그 서비스 안에서 멈추는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쌓아 올린 역량과 습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기준은 멈추지 않는다.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비스가 종료되었을 때, 처음엔 담담한 척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빨리 꺼냈다. 시장이 그렇고, 회사가 그렇고, 상황이 그렇고. 그 말들은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올라온 감정은 슬픔보다 허무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보다는 멤버들과 함께 만들어온 서비스가 이제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쌓아올린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이상 현재와 미래가 아니었다. 과거로 남겨져 버린 공백.


그 다음엔 자꾸만 계산을 하게 됐다. 내가 했던 판단들이 옳았는지, 내가 더 잘했으면 달라졌을지, 내가 놓친 신호는 없었는지. 종료 앞에서 사람은 쉽게 자기 책임을 끌어안는다. '만약에..'라는 문장은 아프지만 익숙하다. 하지만 나조차도 과거로 남겨질 순 없었다. 내가 했던 일은 사라졌지만, 내가 배운 방식은 또 다시 나아가야 했으니까.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건 결국 매일 작은 결정을 반복하는 일이다. 오늘 어떤 고객을 먼저 볼지, 어떤 문제를 더 크게 볼지, 어떤 가설을 실험할지, 어디까지를 포기할지. 그 결정을 하는 동안 나는 ‘결과’를 만들었다기보다 ‘감각’을 만들었다. 지표를 읽는 감각, 팀을 움직이는 감각, 우선순위를 세우는 감각, 내가 흔들릴 때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감각.


서비스가 끝났다고 그 감각까지 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종료라는 사건이 그 감각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지금 느끼는 허무함이 커리어의 빈칸이 되지 않게 하려면, 아주 작은 정리가 필요했다. 거창한 회고가 아니다. 딱 세 가지면 된다.


1. 내가 실제로 만든 변화
ex. 신규 유입 구조를 정리하고, 퍼널 병목을 찾아 실험을 돌렸다.

2. 내가 배운 방식
ex. 가설을 세우고, 실험 단위를 쪼개고, 데이터를 근거로 설득하는 법.

3. 다음엔 다르게 할 것
ex. 협업 프로젝트일 수록 결정 기준을 더 일찍 공유하자.


이 세 줄은 앵커다. 흔들리는 시기에 앵커가 없으면 사람은 쉽게 미끄러진다. (+여기에 분석 데이터나 결과 지표 등이 더해지면 베스트다.)



지금 멈춘 것처럼 느껴져도 사실은 멈춘 게 아니다. 달리던 트랙이 바뀌는 중이다. 속도 대신 방향을 다시 잡는 구간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빨리 다음을 찾아야 해”도 맞다. 동시에 “지금은 조금 아파도 된다”도 맞다. 괜찮다. 둘을 동시에 인정하는 사람이 오래 간다.


서비스 종료는 내 커리어의 한 챕터가 엔딩을 맞이했을 뿐이다. 커리어는 멈추지 않았다. 마음이 허전한 건 당연하다. 그 허전함은 내가 진심으로 했다는 증거다. 이제 남은 건 다음을 준비하는 일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오늘의 공백을 억지로 채우기보다, 공백이 말해주는 것을 듣는 쪽으로.


남는 감각과 기준을 붙잡으면
분명 다른 곳에서 다시 작동할테니까


오늘의 데이터.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기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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