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삶은 고구마, 해담다움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 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합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나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퇴사 후 약 2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구직자다.
타이핑에 10초도 안걸릴 저 문장을 적기까지, 손가락을 열번은 머뭇거린 듯 하다. 이직은 익숙한데 구직이라는 단어는 참 애매하다. 준비 중이면서도, 기다리는 중이면서도, 아직 정착하지 못한 사람의 느낌. 그 애매함이 생각보다 사람을 오래 붙잡는다. 나는 그 애매함을 견디는 데 서툴다.
7번의 직접 제안, 6번의 서류 탈락, 5번의 면접.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3곳의 면접까지.
분명 움직였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과는 자꾸만 멀어진다. 면접까지 갔지만 탈락한 곳도 있고, 다음 전형을 스스로 포기한 곳도 있다. 그 순간마다 마음 속에는 수많은 범버카를 탄 내가 쉼 없이 부딪혔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선택하든 계속 충돌하는 느낌.
2월 내 이직이 목표였다. 그런데 3월까지 늦어질 것 같다. 더 늦어져서도 안되고.
아닌 걸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나를 느린 아이로 만든다. 그래서 더 조급해진다. 조급해질수록 말은 빨라지고, 선택은 얕아진다. 지난 시간 동안 가장 자주 마주한 내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 타의에 의한 퇴사를 겪었고, 실업 급여도 신청해봤다.
‘처음’은 언제나 설레기만 하진 않다. 상황에 따라 단어가 주는 묘한 감정이 있다. 실업 급여를 신청하는 마음은 꽤나 짙은 보라색이었다. 서류를 준비하고, 확인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서류들을 받기 위해 이전 회사들에 연락하고, 제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또 안 받기에는 손해라고 느껴져 자처한 일인데도 말이다.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생기니까 마음이 더 시끄러워지는 종류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가 내게 준 것이 있었다.
블로그와 인스타, 브런치를 통해 개인 콘텐츠를 발행하면서 내가 가진 능력을 어느 곳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더 명확해졌다. 9년이란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지점은 무엇이며, 내가 어떤 주제를 다룰 때 눈빛이 반짝하고, 어떤 언어로 설명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지, 어떤 방식으로 구조를 만들 때 나다움이 드러나는지가 보였다.
또 하나를 배우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과, 그곳이 나를 원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
나를 명확하게 정의하면 모든 게 쉬워질 줄 알았다. 내가 선명해질 수록 자리는 제한되었고, 맞지 않는 면접장에서는 오히려 내가 흐려졌다. 기준이 많아질 수록 기회보다는 제약이 많아진다. 그래서 다음 전형을 포기하기도 했다. 어울리지 않는 방향을 더 이상 붙잡지 않겠다는 선택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이직하는 곳이 진짜로 내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커리어를 계속 옮겨 다니는 능력보다, 한 곳에서 깊게 만들어가는 힘을 갖고 싶어졌으니까.
앞으로 나는 소속되어 있는 봉사 단체의 확장과 개인 프로젝트, 회사 생활을 함께 쌓아가려 한다.
요즘은 첫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같다. 서툴고, 넘어지고, 우당탕하다가 울고 웃고. 그 우당탕이 내 방식이라는 것도 안다. 또각또각 멋지게 걸어가는 걸음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멋진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가 걸어갈 소로들이 모여 단단한 하나의 길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나다운 커리어란 뭘까?
스스로 즐거워하며, 나다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일.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메이크업도 아니고, 프레임에 맞춰 만들어가는 그림도 아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구조. 완벽하진 않겠지만 최소한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상태.
뭐가 됐든 우당탕이 될 거다.
그리고 그게 또, 나다움이다.
이번주, ‘고구마 사세요’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또 다른 씨앗을 심고, 열심히 길러, 다시 판매를 나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