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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담 Nov 22. 2024

[한글로 한,글쓰기#2]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당신의 낮과 밤은 아름답다

배경음악. 허회경 [사라진 만큼 피어날 테니]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올해 2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이유 모를 피로감은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몸은 무겁고, 얼굴은 자주 붓곤 했다. 단순히 운동 부족 때문이라 여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연말, 건강검진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다. 정밀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난 회사를 퇴사했고, 이후의 계획도 없이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 상황에서 암 진단까지 겹치니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했다. 매일 무력감 속에 갇혀 마음이 고이기 시작했고, 곧 탁해졌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자꾸만 초라해보였다.



수술의 과정과 선택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불안정했지만, 상황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갑상선암 수술은 다른 암 수술과 마찬가지로 많은 환자들이 3대 대학병원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긴 대기 시간은 필수적이다. 당시 내 상황은 초진만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주변의 조언과 정보를 찾아보며, 갑상선암 수술은 이제 어느 병원에서든 안정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나는 조건을 명확히 했다.

1.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2. 빠르게 수술을 받을 수 있고, 3. 나름 수술 사례가 많은 교수님일 것. 결과적으로 건국대 병원을 선택했다.


운명처럼, 내게 좋은 흐름이 이어졌다. 초진에서 교수님은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으니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수술 날짜를 확인하는 그 순간에 한 환자가 예약된 수술 일정을 취소했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갈 수 있었다. 수술일은 한 달 뒤로 정해졌다. 또 하나, 수술 중 임파선에서 작은 전이가 발견되었지만, 다행히 더 퍼지기 전에 제거할 수 있었다.


퇴사와 예상 치 못한 암 진단, 그리고 빠른 수술 일정까지.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된 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멈춰있는 듯 느껴졌지만, 사실 세상은 나를 위해 흐르고 있었다.



내면의 둑을 열고 감정을 흘려보내다

비록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녀석이지만,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것. 둘째,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오래 머물면 독이 된다는 것.


난 마음의 둑을 열기로 했다. 고인 감정과 생각들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괜찮아,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어’ 스스로에게 말하며 내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졌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감정은 억눌릴수록 강해지고, 얽힐수록 복잡해진다. 이를 인정하고 흘려보내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진다.


그렇게 내 주변은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

 


나눔의 힘

수술 후, 나는 블로그에 그동안의 시간을 기록했다. 암 진단과 수술을 앞두고 유경험자들이 남긴 기록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글을 남겨줘서 고맙다”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는데 덕분에 큰 힘이 되었다" 등 내 글을 읽은 이들이 남긴 댓글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내가 가진 아픔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나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흐르고 변화하는 삶

부정적인 감정은 너무도 쉽게 자란다. 마음속에서 살금살금 커지다가, 어느새 우리를 짓누른다. 암 덩어리가 몸에 영향을 미치듯, 마음의 건강을 해친다.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렇기에 더 단단해지고 탁해지기 전에  흘려보내야 한다.


물론,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두운 마음을 햇빛 아래로 끌어내는 것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결코 쉬운 건 아니다. 모든 것이 단번에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작은 변화는 가능하다. 고통 속에 머물며 그 무게를 견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흐름을 맞이할 것인지. 우리에겐 선택할 힘이 있다.



다, 괜찮다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삶은 흐르는 물처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걸.


때로는 모든 것이 정체된 듯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삶이라는 큰 흐름의 일부다. 멈춘 듯 보이는 순간에도 여전히 삶의 큰 움직임 속에 함께 하고 있다. 언젠가 몇 걸음 더 내디뎌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볼 때,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깨닫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속도와 방식이 있다. 어떤 물길은 조용히 흐르고, 어떤 물결은 거칠게 요동치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음을 안다.   



그러니, 괜찮다.
결국 다 괜찮아진다.

배경음식. 따뜻한 단호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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