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와 진심의 온기
배경음악. Alexis Ffrench [Dreamland]
*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업무 이메일을 쓰다 보면 손에 익은 문구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안녕하세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인사말은 어느덧 무의식적으로 타이핑되는 습관이 되었다.
어느 날, 광고주와 주고받은 메일에서 마지막 '감사합니다'를 쓰던 순간, 문득 생각이 멈췄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같은 말들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여겼는데, 혹시 진심 없이 습관처럼 내뱉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이 무게를 잃고 단순한 형식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자연스레 진심이라는 본질로 이어졌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내뱉는 말들에는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을까, 그 말들은 반복될수록 진심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고.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간단한 인사말부터 업무용 이메일, 지인과의 짧은 문자, 일상이 된 카카오톡과 SNS, 그리고 이제는 잊혀져가는 손편지까지.
그중 얼마나 많은 말에 진심이 담겨 있을까. 어쩌면 생각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손편지에 무게가 있었다면 우편배달부의 어깨는 남아나질 않았겠지.)
미안해
연인과 다툼이 잦을 때, 그는 항상 “미안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처음에는 진심이 느껴졌지만, 반복되면서 점점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마음이 싫었다. 연인은 늘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마음을 아냐고 했지만.
사과의 말은 그 자체로 무게를 가져야 하는데, 습관처럼 내뱉는 순간 그 의미는 희미해져갔다.
사랑해
사랑 역시 그렇다.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사랑스럽다. 가장 큰 마음을 전달하는 말이지만, 이 역시 때로는 공허한 말이 되기도 한다.
처음엔 떨림과 설렘을 담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의무감처럼 던져지기도 한다. 관계가 익숙해지고 사랑의 말이 반복될수록,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해’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고마워”
이 말은 앞서 말한 두 언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미안해'와 '사랑해'는 화자가 마음을 담아 상대방이 느끼도록 하는 말이라면, '고마워'는 상대가 알아야 하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과 일상 속 작은 순간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기본일 텐데,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의 깊이를 잊곤 한다.
상대가 그 마음을 가벼이 여긴다면 아무리 많은 마음을 전해도 허전한 울림만 번질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진심이 깃든 말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있다면, 상대에게 반드시 닿는다고. 빛바래지 않는다고.
요즘은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한다. (이 질문은 말 속에 진심을 담게 해준다.)
‘나는 지금 무엇에 미안하고, 무엇에 고맙고, 무엇을 사랑하는가?’
우리는 더 자주, 더 많이 말해야 한다.
단순히 말의 빈도가 아닌, 마음을 담은 진심의 빈도를 늘려야 한다. 반복된다는 이유로 그 가치가 줄어들진 않으니까.
진심 어린 말은 내뱉는 단어를 넘어 관계를 이어주고, 삶을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가 된다.
다가오는 계절, 더 많은 진심이 전해지면 좋겠다.
내가 보내는 말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그 말이 마음의 울림으로 남기를 바라며.
오늘 나와 온기를 나눈 사람들에게 고맙고,
조금은 서툴렀던 내 마음에 미안하며,
그 모든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배경음식. 따뜻한 레몬 홍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