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선, 아빠의 시간
아빠의 하루는 무거운 쌀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배달길에 빗길에서 넘어져 화상을 입고,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아빠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걸었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아빠의 강인함과 고독을 느꼈다.
아침 7시, 경주 쌀 상회는 어김없이 하루를 열었다. 차가운 철 셔터가 덜컹 소리를 내며 올라가고, 진열대에 쌓인 잡곡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았다. 오토바이를 끌어내며 하루를 준비하는 아빠의 모습은 시장의 하루를 알리는 풍경 중 하나였다.
가게 한편에는 1평 남짓한 작은 방이 있었다. 성인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 그 방은 문 반쪽이 불투명한 필름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 위로는 투명한 유리가 달려 있어 안과 밖이 보였다. 회색빛으로 물든 작은 방은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공간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아빠의 하루를 이어가는 쉼터이자, 가족의 이야기가 쌓이는 곳이었다.
아빠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그 작고 좁은 방에서 보내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다.
겨울철 한가한 날이면, 아빠는 그곳에 누워 두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두꺼운 패딩을 이불 삼아 잠시 눈을 붙이셨다. 고단한 하루를 잠시라도 잊으려는 듯 잠들어 있던 그의 얼굴. 그러나 미간에는 깊이 새겨진 주름 세 줄이 있었다. 아빠가 감추지 못한 피로와 고단함의 흔적이었다.
그 방은 어린 나에게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TV를 보며 깔깔 웃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엄마의 흰머리를 뽑아 드리던 곳. 나중에 부모님께 고백했지만, 어린 마음에 금고에서 천 원짜리와 500원짜리를 몰래 꺼낸 적도 있었다. 고백을 듣던 아빠는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그 좁은 공간 안에는 나의 작은 비밀이, 우리의 일상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이곳이 아빠에게는 단순한 쉼터가 아니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 가게에는 한 홉짜리 작은 쌀부터 40kg짜리 커다란 쌀포대까지 다양한 무게를 취급했다. 아빠는 그 무거운 쌀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을 다니셨다. 나는 가끔 아빠를 따라 배달길에 나서곤 했는데, 어린 손으로는 들 엄두도 못 내던 무게를 아빠는 묵묵히 짊어지셨다.
그 모습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기억한다. 쌀을 들고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내뱉던 짧은 숨소리, 얼굴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 체취가 되어버린 파스 냄새, 한쪽으로 기울어진 걸음걸이.
아빠는 몸이 편치 않으셨다. 소아마비로 인한 것인지, 청년 시절 다쳤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한쪽 다리가 짧고 얇으신 탓에 걷는 자세도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그런 몸으로도 아빠는 40년 가까이 쌀을 나르고, 배달하며, 쌀가게를 지키셨다.
아빠의 일상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오토바이로 쌀을 배달하던 아빠는 빗길에 미끄러지셨다. 뜨거운 엔진에 다리가 눌려 화상을 입었고, 한동안 제대로 걷지 못하셨다. 그런데도 아빠는 쉬지 않으셨다. 아빠의 사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쌀포대 무게가 쌓이면서 허리 통증이 심해지셨고, 결국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아빠는 늘 그랬듯 다시 일어나셨다.
아빠가 쌀가게를 그만 두실 때 즈음, 하신 말씀이 있다.
“아빤 가게 문 닫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굶어 죽는 줄 알았다. 그만 두면 안됐제. 그게 지금까지 온기다.”
아빠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 가게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책임감과 이웃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셨다.
아빠의 삶은 단지 자신과 가족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동네 통장으로서 이웃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어르신들의 해결사였다. 가게를 찾는 손님과 상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들의 크고 작은 문제를 자기 일처럼 챙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화환은 아빠가 걸어오신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오빠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며 했다던 말은, 그때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장례식은 처음 본다, 아버님 정말 대단한 분이셨네.'
자녀의 결혼식은 부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부모의 장례식은 자녀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는 말. 단순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만 생각했던 이 말이,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빠의 또 다른 매력은 손재주였다. 가게에서 사용하는 크고 작은 물건은 아빠의 손끝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망가진 장난감들은 다시 태어났고, 허름한 나무판자는 바퀴 달린 스케이드보드로 변했다. 가게 구석에서 뭔가를 고치고, 조립하고, 만들어내던 아빠의 모습은 마치 실험실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과학자처럼 진지하고도 멋있었다. 어린 나에게 아빠는 단순히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발명가처럼 보였다.
아빠는 한 사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누군가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조언자였고, 누군가에게는 편히 다가갈 수 있는 친구였다. 또 누군가에게는 매일 마주하는 익숙하고도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어떤 문제든 해결해 주는 만능꾼이자, 손난로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단순한 기술이나 능력 이상의 것을 보여준 아빠는 내게 그런 분이었다.
아빠가 지켜 온 쌀가게는 평범한 일터가 아니다. 가족의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이자, 삶을 이어가는 소중한 기록이다. 그곳엔 아빠가 흘린 땀,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 우리 가족을 채워 준 시간들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종종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 많은 날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서 함께했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내 기억이 조금씩 더 따뜻하게 다가올 뿐이다. 모든 순간이 소중했고, 따뜻하며, 잊히지 않을 이야기가 되어 내 삶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억을 조용히 기록하며 아빠의 삶을 되새기는 중이다.
다음 글에서는 철없던 아이의 고백을 써보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묵직하고 위대한,
나의 아빠, 나의 영웅.
존경하는 담윤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아빠라는 이름은 늘 무거웠습니다.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던 어린 날부터, 조금씩 그를 이해하게 된 지금까지.
위로만 느껴지던 아빠의 존재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내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 쌀가게에서 시작된 아빠의 삶.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사랑과 희생, 그를 통해 배운 것들.
그리고 전하고 싶은 아이의 고백.
이 이야기는 아빠와 나, 그 사이의 시간과 사랑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