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쌀가게 꼬마 영업사원의 비밀

아이의 시선, 아빠의 시간

by 해담
나는 철없던 아이였다.

잘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시장에서 일하는 아빠를 부끄러워하며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언제나 묵묵히 나를 챙기며 사랑을 주셨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아준 아빠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경주 쌀 상회의 ‘꼬마 영업사원’이었다.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께 우리 집 쌀이 얼마나 맛있는지 자랑하며 많이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은 없지만, 졸업식 날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참 야무지고 귀여운 아이였다"라고 말해주셨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절 나는 그저 순수했고, 가족의 삶이 자랑스러웠던 아이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 마음 한구석은 변해갔다. 밥을 먹고 키가 크며 몸은 성장했지만, 마음속에는 철없는 욕망과 비교 의식이 자리 잡았다. 나보다 잘 사는 아이, 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어느 순간 그런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가 아닌 ‘환경’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집은 정원이 딸린 근사한 집이었고, 부모님들은 일명 '사'자 직업에 멋진 차를 몰고 다니며, 다양한 예체능 학원까지 다니는 그들은, 화려했다. 그들의 환경과 나의 삶을 나란히 놓아보며, 나는 시장 한가운데에서 쌀포대가 가득 쌓인 우리 집이 초라하게 보였다. 궂은 날씨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며, 늘 먼지를 뒤집어쓴 아빠의 모습이 점점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움과 숨겨진 진심

결국, 나는 아빠의 직업을 숨겼다. 부모님의 직업을 알게 되는 질문과 상황들 속에서 아빠는 건설업 종사자, 금융권 직원, 혹은 작은 사업가로 변했다. 친구들 집에는 놀러 갔지만,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친구들과의 비교는 나 자신을 넘어 아빠를 향했다. 부끄러움은 점점 커졌고, 나는 그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전교권 친구와 함께 고액의 수학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한 달에 50만 원이라는 금액은 지금 생각해도 아빠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나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우리 딸이 필요하다면 해야지." 그 한 마디가 전부였다. 아빠는 내가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셨고, 지원해 주셨다.


그런데 정작 나는 과외 시간에 문제를 풀기보다 답지를 정독하는 데 그 시간을 보냈다. 공부에 열중하기는커녕, 그저 열심히 하는 척했다. 50만 원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었다.


과외가 끝난 어느 날,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집이 어디냐?” 물어오셨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시장길'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대신, 빌라와 주택가가 형성된 반대편을 가리키며 “저쪽이에요. 근처에서 내려주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차에서 내려 친구 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시장 입구로 걸어가는데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아빠였다. 내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와 계셨던 것이다. 나를 내려주고 가는 길에 아빠를 발견한 친구 아버지는 “아까 저쪽에서 아이를 내려줬다”라고 말씀하셨고, 아빠는 “왜 거기서 내렸지?”라고 의아해하셨다고 한다.


“날도 추운데 왜 거기서 내렸냐”

아빠는 물었다. 그날 나는 솔직할 수 없었다.

“그냥.. 좀 걷고 싶어서요”


어리석은 대답으로 또 한 번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겁했는지,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의 부끄러움은 모두 내 몫이다.



철없던 아이가 놓친 것들

아빠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 어리석음을 이해하셨던 것 같다. 준비물을 잊고 학교에 간 날이면, 아빠는 늘 오토바이에 올라타 내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셨다. “아빠, 준비물 놓고 왔어요”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피곤한 몸으로도 “알았다. 금방 가져다줄게”라고 답하셨다.


정문에서 준비물을 내밀며 “으이고, 다음엔 잊지 말고 챙겨라”라고 웃으시던 아빠의 모습. 그리고 내가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시던 얼굴. 지금 떠올리면 그 모든 장면들이 너무나도 각별하고 애틋하다.


그때 나는 아빠가 감내하고 계신 무게를 몰랐다. 나의 철없음이 그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는 비바람을 맞으며 쌀을 배달하고, 무거운 쌀포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그 모든 무게는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깨달음과 이해

시간이 지나, 내가 아빠의 삶을 이해하게 된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비라봐야 할 건 친구들의 멋진 집이나 화려한 환경이 아니라, 시장 한가운데에서 묵묵히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던 아빠의 걸음걸이라는 것을. 내가 숨기고 싶었던 그 모습은, 사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할 부분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때의 아빠를 이해한다. 아빠의 하루는 단지 생계를 위한 반복이 아니었다. 그 하루하루는 나를 키우고, 내게 삶의 가치를 심어주고, 그 속에서 사랑을 전하는 과정이었다. 정문 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던 건, 내가 아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이며, 매일 무거운 쌀포대를 어깨에 짊어지며 무게를 감당했던 건, 가족을 지탱하는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빠의 쌀가게가 부끄럽지 않다. 아빠가 내딛으신 그 걸음 하나하나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빛처럼 느껴진다. 그가 쌓아 올린 세월의 무게와 흔적들은 이제 내 삶의 밑바탕이 되어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쌀가게를 닫으신 지금도, 아빠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경주쌀상회의 대표님으로 남아 계신다.


철없던 아이가 놓쳐버린 순간들이 이제야 내 삶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그런 아빠에게 어느 날 암이 찾아왔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묵직하고 위대한,
나의 아빠, 나의 영웅.

존경하는 담윤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아빠라는 이름은 늘 무거웠습니다.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던 어린 날부터, 조금씩 그를 이해하게 된 지금까지.
위로만 느껴지던 아빠의 존재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내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 쌀가게에서 시작된 아빠의 삶.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사랑과 희생, 그를 통해 배운 것들.
그리고 전하고 싶은 아이의 고백.

이 이야기는 아빠와 나, 그 사이의 시간과 사랑의 기록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부. 아침 7시, 1평 남짓한 공간, 40kg 쌀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