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夏久)

여름처럼 시작된, 서툴지만 진심이었던 우리들의 첫 만남

by 해담

여름 하, 오래될 구.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여름이 유난히 오래 머무는 이곳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로

한 번 미뤘던 소개팅.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정성껏 예약한 식당이었지만,

막상 도착 후 느껴진 감정은

설렘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웠다.


요즘 레트로 감성이 유행이라지만

세련됨 위에 레트로 한 스푼 얹은

요즘 식당들과는 사뭇 달랐다.


쨍한 민트빛 벽돌 사이

오렌지색 철문이 불쑥 솟은 입구.

첫인상부터 평균 이상의 독특함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아뿔사—

예약해둔 자리는

실내도 실외도 아닌

반쯤 열린 오픈형 개별룸이었다.


빈티지숍에서 막 옮겨온 듯한 소품들이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는

뜨거운 숨결을 겨우 밀어내는 정도였다.


가뜩이나 뛰어오느라 땀에 젖은 나는

더위와 어색함을 씻을 겸

하이볼을 한 잔 시켰다.


무더위 때문인지

몽롱한 공간 때문인지

취기가 평소보다 빠르게 올라왔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내 맞은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라,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잖아.’


작은 얼굴, 둥근 눈매,

곧은 자세에 맑은 인상.

말을 꺼내기 전부터

그에게선 선함이 느껴졌다.


문제는

그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고요한 공간에서

나는 오디오라도 된 듯

끊임없이 대화거리를 꺼내 들었다.


언뜻 보면 내게 호감이 있어 보이는데

나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건

그가 나에게 별 관심 없는 신호 같아 아리송했다.


그럼에도 그가 마음에 들었던 건

이따금 수줍게 웃던 그의 표정 때문이었다.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손끝으로 입가를 가리는 그 모습.

그 표정이 자꾸 생각났고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귀여우면 게임 끝이라는데

난 끝났구먼.


나중에 들어보니

그도 처음부터 나에게 호감이 있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고 했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인 사이엔 믿는 마음이 먼저라

그냥 믿기로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하구는 우리와 참 닮은 식당이었다.

조금 서툴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진심만은 분명했던.


그 더운 여름날,

어색함 속에서도

서로를 천천히 바라봐 준 우리가

참 기특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여름은

‘하구(夏久)’라는 이름처럼

오래도록, 마음 한켠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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