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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못 놀아

초1 친구의 말이다

by 해든


둘째와 유치원,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였다.

어느 날 둘째가 같이 놀자고 얘기했는데

그 친구가 "나는 시간이 없어서 못 놀아"

이렇게 대답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그 친구의 스케줄을 대충 알고 있다. 일주일에 수학 수업만 3시간씩 3번,

영어 수업이 2시간씩 매일, 과학, 피아노, 생활체육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와 수학이 겹치는 날은 영어가 5시에 끝나면

수학이 5시 시작이라서 몇 분 늦게 수학 수업에 들어가서

초등학교 1학년이 5시간 수업을 이어서 듣게 된다.

스케줄을 보면 시간이 없어서 못 논다는 아이의 말은 사실이다.

학원 시간 외에도 숙제하는 시간까지 필요하니 아마 일주일 내내 쉴 틈이 없을 것 같다.

수학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초등수학이 다 끝났다고 하고

3학년에 중등수학을 시작했다.

이 아이가 이 속도로 끝까지 간다면, 그리고 그 과정들이 충실하다면

완벽하게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지속가능할까? 초등학교 1학년때 공부하는 것처럼 12년을 계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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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를 로봇으로 만들려고 한다.

공부하는 기계가 되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시킨다. 그런데 아이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 크면 주변을 보게 되고 비교하게 된다.

그때 "왜 나만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아이는 팽팽하게 당겼던 줄을 놓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잡지 않는다.


보통 이런 순간이 초등학교 4학년쯤에 온다. 그래서 초4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 같다.

초4병이든, 사춘기든 사실 당연한 반응이다.

아이들이 부모말에 100프로 순종하던 시기에서

자신의 생각이 생기고 호불호가 있고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로 변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아이와 소통한다면 초4병이든 사춘기든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다면 오히려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 곁으로 온다.

가장 편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니까.


어떤 엄마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차피 사춘기에 애들이 방황하니까 더 바짝 초등학교에 달려놔야 해.

그래야 조금 방황해도 고등학교 가서 잘해" 이 말은 공부의 속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공부는 1+1=2가 아니다.

미리 해 놓으면 그것이 상자 안에 잘 담겨있다가 5년 후쯤 꺼내면

짠하고 그대로 나오는 썩지 않는 물건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아무리 천재여도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서 날아간다.

1000명 중에 1명 정도 12년을 한결같이 공부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내 아이가 그 1명일 거라고 생각하고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공부만 시키는 것은

투자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내가 아이라면? 내가 지금 초등학교1학년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부모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나는 저렇게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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