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다 함께 거실에서 공부하기?
거실 공부방으로 4명의 자녀를 도쿄대 의학부에 입학시킨 일본 부모의 이야기가 방송되면서
거실 공부방이 널리 알려졌다. TV를 없애고 거실을 도서관처럼 꾸며서 공부방으로 만드는 것이다.
거실에서 공부하도록 하면 아이들이 딴짓을 하지 못하게 감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고 있다.(아이들은 감시를 해야 공부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면서 질문을 주고받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히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집은 몇 안된다.
거실 공부방은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거실을 공부방으로 꾸몄을 때 집에서 아이가 쉴 곳이 없다.
아이들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학생에게 학교는 치열하게 공부하는 전쟁터여야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고 재미있지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학교 말고도 학원이든 놀이터든 아무런 눈치 안 보고 행동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런 긴장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쉴 수 있는 곳이 집이어야 한다.
집을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줘야 집에 있고 싶다.
공간이 분리되어야 하는데 집이 독서실처럼 공부만 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탈출구가 필요하고 집 밖을 나가고 싶다.
집 밖에 나가서야 공부와 감시 없이 자유를 느낄 것이다.
PC방에 아이들이 넘치고 게임에 중독되는 것도 대부분 현실도피의 공간이 필요해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다.
부모로부터 사회성의 기본을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여 앉아서
일상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듣고 소통할 공간이 필요하다.
거실이 공부방으로 꾸며져 있더라도
거실 이외의 공간이 카페같이 둘러앉아 이야기할 수 있고 치킨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있다면 문제가 안된다. 집에는 오락과 쉼의 공간, 편안한 소통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
집의 공간을 구성할 때 "집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두 번째로 거실공부방은 사실 TV를 없애려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TV는 순기능도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다.
책을 읽으며 상상할 수 있지만 직접 한번 보면 그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 더 풍부해지기도 한다.
희로애락의 감정도 영상으로 봤을 때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적정 범위 내에서 역사적 사건, 지구의 다양한 자연환경 등을 TV를 통해 간접체험하는 것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감정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또한 크게 유행하는 개그 프로그램, 가수의 노래, 드라마는 동시대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에
보고 듣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야 한다.
배경지식은 학습과 독서를 통해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학습 외적인 것도 포함된다.
그 나이에 당연히 겪을 법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국어 수업 시간에 광고를 배우는데 많이 접해본 적이 없다면
학습만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 번째는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집은 공부하는 학생"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늦게 집에 들어온 아빠나 엄마가
30분 정도 편하게 누워서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서 쉬고 싶을 때
거실은 아이들이 다 조용히 공부하고 있어서 혼자 조용히 방 안에서 쉬어야 하고
그것에 10년간 지속된다면 부모에게 집은 숨 막히는 곳이 될 것이다.
모두 공부하는 아이 눈치를 보면서 아이를 왕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집이 시끄러운데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으면 귀를 막고라도 공부하면 된다.
가정에서부터 세상이 자기를 위해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느 환경에서든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적자생존"이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환경이라는 것이 너무 극단적이면 안된다.
공부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공부를 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자.
거실은 소파에 편하게 누울 수도 있고 TV도 볼 수 있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숙제를 하기도 하고 리코더 연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거실을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